교운2장21절
종도들에게 칠성경을 외우게 하시고 도주께서 대원사에 들어가셔서 백일 도수를 마치셨도다. 마치신 날이 바로 신유년 七월 칠석날이라, 그때에야 종도들이 칠성경을 외운 뜻을 깨달으니라. 그들을 보시고 도주께서 「이곳이 바로 상제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니라. 아직 응기하여 있는 것을 내가 풀었노라」고 말씀하셨도다.
교운2장22절
신유년 九월 五일에 권 태로와 그 외 네 사람이 도주의 분부를 받고 구릿골에서 통사동 재실로 상제의 성골을 모시고 돌아오니라. 이때 갑자기 뇌성이 일고 번개가 번쩍였도다.
교운2장23절
성골이 옮겨진 후 十五일이 되니 상제께서 구세 제민하시고자 강세하신 날이 되니라. 이날 재실에 모여 치성을 올린 후에 도주께서 「시시묵송 공산리 야야한청 잠실중 분명조화 성공일 요순우왕 일체동(時時黙誦空山裡 夜夜閑聽潛室中 分明造化成功日 堯舜禹王一切同)이라」 말씀하셨도다. 그러나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느니라. 그들 속에 권 태로ㆍ이 상우ㆍ이 우형이 끼어 있었도다. 이들은 재실에서 매일 밤낮으로 치성을 올리고 공부하시는 도주의 시종을 들었도다.
교운2장24절
도주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니라. 이 좇는 무리들에게 도주께서 말씀하시길 「임술년 섣달에 이르면 납월 도수에 북현무 도수(北玄武度數)가 닥쳐서 금전이 아니면 일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 하시고 소액의 금품을 남겨 놓으셨도다. 좇던 무리 중 한 사람이 문 공신(文公信)과 합세하여 야밤에 재실에 침입하여 난동을 부린 끝에 상제의 성골과 약간의 금품을 훔쳐가니 섣달 그믐 새벽 두 시였도다.
교운2장25절
도주께서 계해년 정월에 함안 회문리를 순회하고 그곳에 잠시 머무시다가 밀양 종남산(密陽終南山) 세천동(洗川洞) 김 병문(金炳文)의 집에 가셨도다. 이때 배 문걸이 도주를 모시고 따르니라. 그곳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종이에 글을 쓰셔서 둔 도수라 하시고 석 달 동안 행하셨는데 그 종이가 심한 바람에도 날리지 않았도다.
교운2장26절
도주께서 그 후 주선원(周旋元)과 주선원보(周旋元補)란 두 직책을 마련하고 전교의 임무를 담당하게 하시니라. 이해 六월 치성일 전날에 밀양의 이 우형ㆍ김 용국ㆍ최 창근ㆍ안 병문 그리고 부산의 박 민곤과 안동의 권 태로와 의성의 조 원규와 예천의 이 종창ㆍ신 용흠 그리고 봉화의 박 붕래ㆍ김천의 김 규옥과 풍기의 조 진명과 청도의 장 득원 외 여러 사람들이 회문리에 모인 자리에서 도주께서 「금년이 이재신원(利在新元) 계해년이라」고 말씀을 마치고 전교를 내리시니라.
   傳 敎
 七閏十九歲爲章 二十七章是會當
按 間一年置閏則有餘日 間二年置閏則日不足 及至十九年 置七閏則無餘不足故以
  十九年爲一章 二十七章爲一會 一會凡五百十三年也 孟子所謂五百年必有王者
  興者此也
 三會爲統 三統爲元 循環往復互無彊
按 一會各五百十三年則 三會合一千五百三十九年也 一統各一千五百三十九年
  則三統合四千六百十七年是爲一元
 四千六百十七年前丁巳軒轅立極肇斯元
按 黃帝距今四千六百十七年前丁巳(上元甲前計算)
 萬像萬事皆有是 諸法諸書總此源
按 天文地理人事 皆黃帝之所始敎而 史記記年亦自黃帝始也
 傳囂頊嚳勛華禹 初統初會世世聖
按 自黃帝至於舜禹畧五百年矣 初統初會者以黃帝爲始則 以黃帝元年計 以至於舜
  禹五百十三年者也
 日出萬暈同發明 春回品物共華盛 初統之中降中季 聖不承承但一時
按 初統者黃帝以後凡一千五百三十九年之謂而 五百十三年以後則初統之中會也 一
  千二十六年以後則爲初統之季會也
 禹後有湯湯後文 一會一聖應會期 中統由來世漸降 聖不道行但敎傳
按 中統者黃帝卽位 後千五百三十九年以後爲仲統也
 釋後有孔孔後耶一會一敎各門筵
按 釋迦如來距今二千九百五十年(癸亥年計)癸丑生 孔子距今二千四百七十四年庚
  戌生 耶蘇距今一千九百二十三年辛酉生
 季統敎亦無肇聖 惟有述聖斷啓來
按 季統者黃帝卽位 後三千七十八年以後之季統也 距今一千五百年前六朝及新羅之
  時佛道中興 其後五百年距今略一千年前大宋之時濂洛諸賢一時傳道 其後五百年
  以後羅馬法王以耶蘇敎爲西洋之盟主
 佛梁儒宋耶羅馬 一敎一昌應會回
교운2장27절
도주께서 청도 유천(淸道楡川)의 박 동락(朴東洛)의 집에서 단 도수를 행하시니 이것이 곧 진인 보두법(眞人步斗法)이니라. 이때 배 문걸이 시종을 들었도다.
교운2장28절
계해년 九월에 이를 마치시고 도주께서는 十월부터 다음 해 二월 중순까지 청도의 적천사(磧川寺) 도솔암에 있는 칠성각 뒤에 돌단을 높이 쌓고 二十四방위를 정하고 천지신명을 응기케 하고 공부시간은 저녁 일곱 시부터 다음날 아침 여섯 시로 정하여 일분일초도 어김없이 넉 달 동안 계속하셨는데 낮에는 공부 행하실 때 쓰실 글을 많이 쓰셨도다. 이때에 공부는 단 도수라 하셨으며 시종한 사람은 배 문걸ㆍ이 우형ㆍ박 민곤이니라.
교운2장29절
날로 도주를 흠모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므로 태인에 갑자년 四월에 도장이 마련되었도다. 도주께서 밀양 종남산 세천에서 보시던 둔 도수를 마치고 도장에 돌아와 치성을 올리시니라. 치성을 끝내고 칼을 자루에서 뽑아들고 육정신을 외우시면서 보두법을 행하고 종남산 세천에서 공부할 때 써놓았던 여러 글종이를 불사르셨도다.
교운2장30절
갑자년 여름에 도주께서 배 문걸을 데리고 밀양 종남산 영성정(靈聖亭)에 이르시어 폐백 도수(幣帛度數)를 밤 열 시부터 다음날 아침 여섯 시까지 다섯 달 계속하시고 다시 함안 반구정으로 옮겨 마치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