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운2장31절
갑자년 十一월에 태인도장에 가셔서
 庚은 변경지이시(變更之伊始)하고
 申은 신명지의당(神明之宜當)이라
 천어사어경신(天於斯於庚申)하고
 지어사어경신(地於斯於庚申)이라
 만물종어경신(萬物終於庚申)하고
 아역여시경신(我亦如是庚申)이라
고 밀양의 이 우형ㆍ김 용국ㆍ박 민곤ㆍ안동의 권 태로ㆍ청송의 조 호규ㆍ의성의 김 장회ㆍ봉화의 박 붕래ㆍ김천의 김 규석 등에게 말씀하셨도다.
교운2장32절
을축년에 구태인 도창현(舊泰仁道昌峴)에 도장이 이룩되니 이때 도주께서 무극도(无極道)를 창도하시고 상제를 구천 응원 뇌성 보화 천존 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로 봉안하시고 종지(宗旨) 및 신조(信條)와 목적(目的)을 정하셨도다.

   종지(宗旨)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
 (陰陽合德 神人調化 解冤相生 道通眞境)

   신조(信條)
 사강령(四綱領)∙∙∙ 안심(安心)ㆍ안신(安身)ㆍ경천(敬天)ㆍ수도(修道)
 삼요체(三要諦)∙∙∙ 성(誠)ㆍ경(敬)ㆍ신(信)

   목적(目的)
 무자기(無自欺)  정신개벽(精神開闢)
 지상 신선 실현(地上神仙實現) 인간 개조(人間改造)
 지상 천국 건설(地上天國建設) 세계 개벽(世界開闢)
교운2장33절
도주께서 이해에 각도문을 말씀하시니라.
   覺 道 文
夫聖人之經典不求文章之色彩而求其眞理眞人之心求其實而不求外飾求其物之事理則求其天然而不求造作也故聖人明心達道而不求聞達書不求文章之色彩衣不求綾羅也求於文章者聖人之心法難得求乎外飾者聖人之眞實難得大哉聖人之道德元亨利貞大經大法道正天地數定千法而理定心法正大光明仙佛儒大道正通是以天命代語先後天道理氣生大矣至矣聖矣惟我奉敎後學以光大道以承大德以弘大業淸華五萬年龍華仙境一一同躋之地千萬幸甚焉
교운2장34절
봄 어느 날에 도주께서 부안 변산(邊山)에 가셔서 육정(六丁)신장을 불러 응기케 하시니 뇌성벽력이 크게 일고 산천이 진동하는 듯하였도다.
교운2장35절
이때부터 도주께서는 토지를 해원하고 제민(濟民)하고자 안면도와 원산도(元山島) 두 섬에 간사지(干潟地)를 개척하기 시작하셨도다. 신도들로 구성된 진업단(進業團)과 헌금 二만 원과 구태인 일대의 개간지에서 얻어진 곡물 三百석이 동원 투입되었도다. 그러나 두 섬의 네 곳에서 뜻을 이룩하고자 하셨으되 심한 풍랑으로 두 곳은 뜻을 이룩하지 못하고 그 후 일본(日本) 마상 회사(馬上會社)가 성과를 거두게 되었도다. 안면도의 二十만 평의 농지와 원산도의 염전(鹽田)은 두 곳의 여러 마을 사람을 구제할 수 있었도다. 도주께서 제민 사업을 돕는 한편 안면도 창기리에 있는 재실 홍일우(洪一宇)에서 공부를 하셨도다. 이때에 서산읍의 사람 이 동만(李東萬)이 도주를 가까이 모셨도다.
교운2장36절
개척의 제민 사업으로 안면도에 와 계신 도주를 이 정률이 모시고 그의 아들이 심부름을 하였도다. 어느 날 밤에 도주께서 그 아들에게 가지고 계시던 큰 칼을 숨겨 두라고 이르셨도다. 그러나 그 아들은 칼이 무거워서 옮기지 못하여 그 사연을 도주께 아뢰니 「네 마음으로 숨겨 보라」고 다시 이르시니 아들이 마음속으로 뒤뜰 대밭에 숨길까 생각하고 있는 순간에 칼이 없어졌도다. 이튿날 창기리 촌장이 경관을 데리고 도주께서 머물고 계신 방을 샅샅이 뒤지다가 경관이 큰 칼의 향방을 도주께 물으니라. 이것은 그들이 도주를 요술쟁이로 안 까닭이나 증거를 잡지 못하고 돌아가니라. 도중에서 경관이 그 아들을 보고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 아이가 「몸을 위해 해변에 수양하러 왔노라」고 대답하니라. 이들이 돌아간 후에 그 아이는 도주께 「저도 모르게 그런 대답이 나왔나이다」고 아뢰었도다. 이에 도주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으며 큰 칼은 대밭에 있었도다.
교운2장37절
얼마 후 그 촌장이 급히 도주를 찾아와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들이 죽게 되어 살려주시기를 애원하는지라. 도주께서는 시종하는 아이와 함께 그 집으로 가서 병자실에 아이를 들여보내시니 아이는 그 방에 들어서자 병자의 머리맡에 갑옷을 입은 무장이 칼을 뽑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 나와서 그 사정을 아뢰니 이 말을 들으시고 아무 말씀 없이 병자실에 들렀다 나오셔서 거처에 돌아오셨도다. 다음날에 촌장이 황급하게 도주를 찾더니 「아들이 죽었으니 어찌 하오리까」고 여쭈니 도주께서는 그를 앞세우고 시체실에 드시어 자신의 손가락을 죽은 자의 가슴에 대시니 죽었던 자가 깨어 가족들을 돌아보고 「나는 한명이 되어 가니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말하니라. 이때 도주께서 손가락을 몸에서 떼시니 병자는 그제야 숨을 거두었도다.
교운2장38절
도주께서 병인년 봄 어느 날 공부를 마치고 담뱃대 도수라고 하시면서 담뱃대의 담배통과 물부리에 크고 작은 태극을 그려 여러 개를 만들어 여러 종도들에게 등급별로 나눠 주시고 일반 신도들에게는 제각기 설대에 태극을 그려 넣게 하셨도다.
교운2장39절
여름에 도주께서 태인과 서울 도염동에 오르내리시다가 겨울에 태인에 머무셨도다. 서울에서의 공부는 그 내용이 알려져 있지 않았도다.
교운2장40절
도주께서 태인에 계시다가 정묘년 九월부터 배 문걸을 데리시고 통사동의 재실에 가셔서 주(籌)를 놓는 공부를 석 달 동안 보시고 그 후에도 계속하셨도다. 주의 판을 오동목으로, 숫가지를 대나무 조각으로 하셨도다. 숫가지 놓는 소리가 그치지 아니하고 숫가지가 이리저리로 옮겨질 때마다 불빛이 번쩍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