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록3장11절
이달에 상제께서 볼일이 계셔서 태인(泰仁) 신배(新培)의 동리에 들어서시니 불이 나는도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불길이 점점 강해져 온 동리를 삼킬 듯하니라. 도저히 끌 수 없으리라 판단하시고 상제께서 「불을 피워 동리를 구하리라」 말씀하시고 형렬을 시켜 섶나무로 불을 마주 피우게 하시니 불이 곧 꺼졌도다.
행록3장12절
이해 五월에 백 남신을 체포하라는 공문이 서울로부터 전주부에 전달되니 남신이 당황하자 김 병욱이 남신에게 작년 겨울에 자기가 화난을 당하였을 때 상제의 도움으로 화난을 면하였음을 알리니 그는 병욱을 통해 상제의 도움을 청하였도다. 상제께서 「부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十만 냥의 증서를 가져오라」 하시니라. 병욱이 곧 남신으로부터 十만 냥의 증서를 받아 가지고 이것을 상제께 올렸도다. 그 후에 남신은 화난에서 풀리면서 남(南) 삼도(三道)의 세무관이 되어 몇만 냥의 돈을 모았고 상제께서는 그 후에 증서를 불사르셨도다.
행록3장13절
상제께서 이해 六월에 김 형렬의 집에 이르시니라. 그는 상제의 말씀을 좇아 전주로 가서 김 병욱을 만나고 상제와 만날 날짜를 정하고 돌아오니라. 그가 돌아오는 길에 장 흥해의 부친 장 효순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니라. 형렬은 모든 것을 상제께 아뢰면서 「장 효순은 진작 우리의 손에 죽었어야 마땅하거늘 저절로 죽었으니 어찌 천도가 공정하다 하오리까」고 여쭈니라. 상제께서 들으시고 「이 무슨 말이냐 죽은 자는 불쌍하니라」고 꾸짖으셨도다. 그 이튿날 상제께서 병욱과의 약속이 있으심에도 전주부로 가시지 않고 형렬을 이끌고 고부로 향하시는지라. 형렬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상제께서 병욱과의 약속을 어기시는 이유를 여쭈었으나 상제께서 웃으시며 대답을 하시지 않았도다.
행록3장14절
일진회와 아전의 교쟁이 전주에서 갑진년 七월에 있었도다. 최 창권(崔昌權)이란 사람이 부내의 아전을 모아 일진회 타도의 의병을 일으키고자 각 군 각 면으로 통문을 보냈도다. 상제께서 이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어렵게 살아난 것이 또 죽겠으니 그들을 내가 제생하리라」 하시니라. 상제께서 화정리의 이 경오(李京五)를 찾아 돈 七十냥을 청구하시니 그가 돈이 없다고 거절하였도다. 부득이 다른 곳에서 돈 일곱 냥을 구하여 가지시고 「이 돈이 능히 七十냥을 대신하리라」 말씀하셨도다.
상제께서 형렬을 대동하시고 용머리 주막에 돌아오셔서 많은 사람을 청하여 술을 권하여 나누시고 난 후에 종이에 글을 쓰고 그 종이를 여러 쪽으로 찢어 노끈을 꼬아서 그 주막의 문돌쩌귀와 문고리에 연결하여 두시니라. 그날 오후에 아전과 일진회원 사이에 화해가 이룩되니 일진회원들이 사문을 열고 입성하니라. 이 일에 상제께서 소비하신 돈이 엿 냥이었도다. 가라사대 「고인은 바둑 한 점으로써 군병 百만 명을 물리친다 하나 나는 돈 엿 냥으로써 아전과 일진회의 싸움을 말렸느니라」 하셨도다.
행록3장15절
이후에도 얼마간 상제께서 그 주막에 머무르셨도다. 밤마다 부내의 순검들이 순회하면서 사람들을 조사하여 일진회원을 색출하는지라. 상제께서 일진회원에게 「그대들이 이같이 고난을 겪기만 하고 벗을 줄을 모르니 무슨 일을 하느뇨.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 관부의 조사를 면케 하리라」 말씀하시니 이로부터 그렇게 엄격하던 취체가 풀렸도다.
행록3장16절
이와 같이 범사가 풀린 후에 상제께서 경오에게 「내가 그대에게 돈 七十냥이 있음을 알고 청구한 것인바 왜 그렇게 속이느뇨」라고 말씀하시니 그가 정색하여 「참으로 없었나이다」고 여쭈니라. 그 이튿날 경오의 집에 화적이 들어 그 돈을 모두 잃었도다. 그 사실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그 돈에 척신이 범함을 알고 창생을 건지려고 청한 것이어늘 그가 듣지 아니하였도다.」
행록3장17절
어느 날 상제께서 문 공신(文公信)에게 돈 서른 냥을 지니게 하시고 피노리를 떠나 태인 행단(杏壇) 앞에 이르셨도다. 주막에 들러 술을 찾으시니 주모가 술이 없다고 대답하기에 상제께서 「이런 주막에 어찌 술이 없으리오」라고 하시니 주모가 「물을 붓지 아니한 새 독의 술이 있나이다」고 대답하기에 상제께서 「술은 새 독의 술이 좋으니라. 술에 안주가 있어야 하리니 돼지 한 마리를 잡으라」 분부하시고 글을 써서 주모에게 주어 돼지막 앞에서 불사르라고 이르시니 주모가 그대로 행한바 돼지가 스스로 죽으니라. 또 상제께서 주모에게 「돼지를 삶아 먼저 맛을 보는 자는 누구든지 죽으리라」 분부하셨도다. 상제께서 삶은 돼지를 그릇에 담아 뜰 가운데 술을 전주로 걸러서 마루 위에 놓게 하시고 글을 써서 주인을 시켜 뜰 한가운데서 불사르게 하신 후에 공신과 주인과 참관한 마을 사람과 행인들과 함께 술과 고기를 잡수셨도다. 이때 상제께서 큰 소리로 「무엇을 더 구하느뇨. 글자 한 자에 하나씩만 찾아가면 족하리라」고 외치셨도다.
행록3장18절
그 이튿날 아침에 공신이 술과 고기 값으로 서른석 냥을 몽땅 갚은 뒤에 상제께서 공신을 데리고 행단을 떠나 솔밭 속으로 지나시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이놈이 여기에 있도다」 하시는도다. 공신이 놀라서 옆을 보니 동자석(童子石)만이 서 있도다. 그곳에서 원평으로 행하시는 도중에 공신에게 「훗날 보라. 일본 군사가 그곳에 매복하였다가 여러 천 명을 상하게 할 곳이니라. 그러나 글자 한 자에 하나씩밖에 죽지 않게 하였으니 저희들이 알면 나를 은인으로 여기련만 누가 능히 알리오」라고 상제께서 말씀하셨도다. 그 후에 일진회원 수천 명이 떼를 지어 그곳을 지나다가 일본 군사가 의병인 줄 알고 총을 쏘니 스물한 명이 죽었도다.
행록3장19절
금구 수류면 평목점(金溝水流面坪木店)에서 정 괴산(丁槐山)이라는 자가 집안이 가난하여 주막의 술장사로 겨우 호구하면서 매양 상제를 지성껏 공양하더니 상제께서 어느 날 우연히 주막에 들렀을 때 괴산이 상제께 올리려고 개장국을 질솥에 끓이다가 질솥이 깨어지므로 그의 아내가 낙담하여 울고 섰거늘 상제께서 측은히 여기셔서 쇠솥 하나를 갖다 주었더니 이로부터 그의 가세가 날로 늘어났도다. 그 후에 그가 태인 방교(泰仁方橋)로 이사하게 되자 그 쇠솥을 수류면 환평리(環坪里) 정 동조(鄭東朝)에게 팔았더니 이로부터 괴산은 다시 가난하게 되고 정 동조는 도리어 살림이 일어나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 솥을 복솥이라 불렀도다.
행록3장20절
상제께서 부안을 거쳐서 고부 입석리 박 창국(朴昌國)의 집에 이르러 수둥다릿병으로 며칠 동안 신고하셨도다. 이때 상제의 누이가 되는 창국의 부인이 맨발로 풀밭에 다니는 것을 보시고 「이 근처에 독사가 있으니 독사가 발을 물면 어찌하느냐」고 걱정하시고 상제께서 길게 휘파람을 부시니 큰 독사 한 마리가 담장 밖의 풀밭에서 뜰 아래로 들어와 머리를 드니라. 이때에 창국이 바깥에서 들어오다가 독사를 보고 크게 놀라서 짚고 있던 상장으로 뱀을 쳐 죽였도다. 이것을 보시고 「독사혜(毒蛇兮) 독사혜(毒蛇兮) 상인견지(喪人見之) 상장타살(喪杖打殺) 도승견지(道僧見之) 선장타살(禪杖打殺). 누이는 상장도 선장도 없으니 무엇으로써 독사를 제거하리오」라고 말씀하시고 누이가 맨발로 땅에 묻어 있는 피를 밟으면 해를 볼까 봐 손수 그것을 밟아서 독기를 제거하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