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록3장61절
상제께서 감방을 옮기신 후에 형렬ㆍ자현에게 가라사대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의 공사를 처결하나니 우리 셋이면 무슨 일이든지 결정하리라」 하시고 또 자현에게 가만히 가라사대 「비록 몇십만 인이 이러한 화액을 당하였을지라도 일호의 상처가 없이 다 풀리게 할지니 조금도 염려 말라」 하시니라. 그믐날 밤에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이것은 서양에서 신명이 넘어옴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상제께서 옥중에서 과세하셨느니라.
행록3장62절
무신년 원조에 경무관이 죄수에게 주식을 한 상씩 나누어 주기에 모든 종도는 「주식을 나누어 주니 이제 죽이려는 것이로다. 우리는 상제를 따르다가 결국 죽게 되는도다」고 한층 더 상제를 원망하였도다.
행록3장63절
이날에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가 냉혹하였도다. 「이것은 대공사를 처결한 까닭이노라」 하시니라. 경무관이 여러 사람을 취조하여도 아무 증거가 없으므로 상제를 광인으로 취급하여 옥중에 남기고 정월 十일에 옥문을 열어 여러 사람을 석방하였도다.
행록3장64절
출옥한 종도들은 제각기 집에 돌아갔으나 경석은 고부에 와서 상제의 출옥을 二월 四일 경칩일(驚蟄日)까지 기다려 상제를 맞이하여 객망리 본댁으로 모시고 형렬은 상제께서 출옥하심을 듣고 그제야 안심하고 동곡으로 돌아갔도다.
행록3장65절
화난이 있은 후 어느 날 상제께서 문 공신의 집에 가시니 공신이 불쾌한 어조로 불평을 털어놓느니라. 「일전에 고부 음식점의 주인이 나에게 와서 외상으로 달린 주식대를 갚으라는 독촉을 하였는데 생각컨대 고부화액 때 가지고 갔던 백목과 돈을 흩어 버리지 않으시고 그 음식 값을 갚지 아니하셨나이까.」 상제께서 묵묵히 들으시고 가라사대 「네 말을 들으니 그러하리로다. 순창 농암에 사흘 동안 계속 머물면서 너를 만나 여러 가지 큰 공사를 참관케 하였고 또한 고부 도수에 감당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네게 주인을 정하여 독조사 도수를 붙였노라. 진주 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으니 남의 돈을 따 보지도 못하고 제 돈만 잃고 바닥이 난 후에야 개평을 뜯어가지고 새벽녘에 본전을 회복하는 수가 있음을 말함이니라. 고부에서 음식 값을 말한 일이 있었으나 그 돈을 쓰면 독조사가 아니니라. 그때 네가 꼭 돈이 있어야 되겠다고 했으면 달리 주선이라도 하여 주었으리라」 하시니 공신이 잠잠히 듣고만 있다가 여쭈기를 「일이 그와 같을 진대 그만두사이다」 하니라. 상제께서는 동곡으로 돌아가셨도다.
행록3장66절
고부화액 때 체포되었던 二十여 명의 종도 중에 김 형렬ㆍ김 자현 두 사람밖에 남지 않고 다 각기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