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1장11절 |
상제께서 어느 날 경석을 데리고 농암(籠岩)을 떠나 정읍으로 가는 도중에 원평 주막에 들러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술을 사서 권하고 「이 길이 남조선 뱃길이라. 짐을 많이 실어야 떠나리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三十리 되는 곳에 이르러 「대진(大陣)은 일행 三十리라」 하시고 고부 송월리(松月里) 최(崔)씨의 재실에 거주하는 박 공우(朴公又)의 집에 유숙하셨도다. 공우와 경석에게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일지라도 모르는 일이니라」 또 「나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서 천하를 대순하다가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려고 너희 동방에 순회하던 중 이 땅에 머문 것은 곧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 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 주려 함이노라.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 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 신자 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다」라고 말씀하셨도다. |
권지1장12절 |
상제께서 섣달 어느 날 종도들과 함께 동곡으로 가시는데 길이 진흙으로 심히 험하거늘 치도령을 내리시니 질던 길이 곧 굳어지니라. 마른 짚신을 신고 동곡에 가실 수 있었도다. 그 당시 쓰신 치도령은 「어재 함라산하(御在咸羅山下)」의 여섯 글자인바 상제께서 이것을 불사르셨도다. |
권지1장13절 |
상제께서 농암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마치시고 그곳을 떠나려 하실 때에 차 경석이 와서 배알하고 「길이 질어서 한 걸음도 걷기 어렵나이다」고 아뢰는도다. 상제께서 양지에 「칙령 도로 신장 어재 순창 농암 이우 정읍 대흥(令道路神將 御在淳昌籠岩 移于井邑大興里)」라 쓰시고 물에 담궜다가 다시 끄집어내어 손으로 짜신 후에 화롯불에 사르시니라. 이때 갑자기 큰 비가 내리다가 그치고 남풍이 불더니 이튿날 땅이 굳어지는도다. 상제께서 새 신발을 신고 경석을 앞장세우고 정읍에 가셨도다. |
권지1장14절 |
그 후에 상제께서 김제 반월리(金堤半月里) 김 준희(金駿熙)의 집에 계셨을 때 전주 이동면 전룡리(全州伊東面田龍里)에 사는 이 직부의 부친이 상제를 초빙하는도다. 상제께서 그 집에 옮겨 가셨는데 그 집 훈장이 상제의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는 것을 미리 아셨도다. 상제께서 줏대를 갖고 산을 두시며 그 동네 호구와 남녀 인구의 수를 똑바로 맞추시고 「사흘 안에 한 사람이 줄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니라. 그와 직부가 이상히 여겨 동네 호구를 조사하니 一호 一구의 차이도 없었고 사흘 안에 한 사람이 죽었도다. |
권지1장15절 |
상제께서 아우 영학(永學)에게 부채 한 개에 학을 그려 주시고 「집에 가서 부치되 너는 칠성경(七星經)의 무곡(武曲) 파군(破軍)까지 읽고 또 대학(大學)을 읽으라. 그러면 도에 통하리라」고 이르셨도다. 영학이 돌아가는 길에 정 남기의 집에 들르니 그 아들도 있었는데 아들이 부채를 탐내어 빼앗고 주지 않으니라. 영학이 그 부채의 내용 이야기를 말하니 아들은 더욱 호기심을 일으켜 주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영학은 빼앗기고 집에 돌아왔도다. 아들은 부채를 부치고 대학의 몇 편을 읽지도 않는데 신력이 통하여 물을 뿌려 비를 내리게 하며 신명을 부리게 되는지라. 남기는 기뻐하여 자기 아들로 하여금 상제의 도력을 빼앗고자 아들과 함께 하운동에 가는데 때마침 상제께서 우묵골(宇默谷)로부터 하운동에 오시는 길이었도다. 남기의 아들이 상제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겁을 먹고 도망가거늘 남기가 붙들고 와서 상제께 배알하니 상제께서 그의 속셈을 꿰뚫고 남기의 무의함을 꾸짖으시며 그 아들의 신력(神力)을 다 거두신 후에 돌려보내셨도다. |
권지1장16절 |
상제께서 전주 용두치(龍頭峙)에서 우사(雨師)를 불러 비를 내리는 공사를 보셨도다. 이 치복이 전주 김 보경을 찾고 상제를 배알하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이런 때에 나이 적은 사람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절을 받느니라.」 치복이 상제께 사배를 올리니 상제께서 「금년에 비가 극히 적으리라. 만일 비가 내리지 않으면 천지에 동과혈(冬瓜穴)이 말라 죽으리라. 그러므로 서양으로부터 우사를 불러서 비를 주게 하리라」 말씀하시고 술상을 차리고 치복에게 술 두 잔을 주시며 한 잔을 요강에 부으셨도다. |
권지1장17절 |
백 남신의 친족인 백 용안(白龍安)이 관부로부터 술 도매의 경영권을 얻음으로써 전주 부중에 있는 수백 개의 작은 주막이 폐지하게 되니라. 이때 상제께서 용두치 김 주보의 주막에서 그의 처가 가슴을 치면서 「다른 벌이는 없고 겨우 술장사하여 여러 식구가 살아왔는데 이제 이것마저 폐지되니 우리 식구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통곡하는 울분의 소리를 듣고 가엾게 여겨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어찌 남장군만 있으랴. 여장군도 있도다」 하시고 종이에 여장군(女將軍)이라 써서 불사르시니 그 아내가 갑자기 기운을 얻고 밖으로 뛰어나가 소리를 지르는도다. 순식간에 주모들이 모여 백 용안의 집을 급습하니 형세가 험악하게 되니라. 이에 당황한 나머지 그는 주모들 앞에서 사과하고 도매 주점을 폐지할 것을 약속하니 주모들이 흩어졌도다. 용안은 곧 주점을 그만두었도다. |
권지1장18절 |
상제께서 김 덕찬ㆍ김 준찬 등 몇 종도를 데리고 용두리에서 공사를 행하셨도다. 이곳에 드나드는 노름꾼들이 돈 八十냥을 가지고 저희들끼리 윷판을 벌이기에 상제께서 저희들의 속심을 꿰뚫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저 사람들이 우리 일행 중에 돈이 있음을 알고 빼앗으려 하나니 이 일로써 해원되니라」 하시고 돈 五十냥을 놓고 윷을 치시는데 순식간에 八十냥을 따시니라. 품삯이라 하시며 五푼만을 남기고 나머지 돈을 모두 저희들에게 주며 말씀하시니라. 「이것은 모두 방탕한 자의 일이니 속히 집으로 돌아가서 직업에 힘쓰라.」 저희들이 경복하여 허둥지둥 돌아가니라. 종도들이 상제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윷이 되는 법을 궁금히 여기는 것을 알아차리시고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던지는 법을 일정하게 하면 그렇게 되나니 이것도 또한 일심이라」 하셨도다. |
권지1장19절 |
박 공우가 한때 일진회의 한 간부였으나 상제를 따른 후의 어느 날 가만히 일진회 사무소에 일을 보고 돌아왔는데 상제께서 문득 공우에게 이르시기를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은 자는 그 몸이 찢어지리니 주의하라」 하시기에 공우는 놀라며 일진회와의 관계를 아주 끊고 숨기는 일을 하지 않으니라. |
권지1장20절 |
상제께서 어느 날 공우를 데리시고 태인 새울에서 백암리로 가시는 도중에 문득 관운장(關雲長)의 형모로 변하여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내 얼굴이 관운장과 같으냐」 하시니 공우가 놀라며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거늘 상제께서 세 번을 거듭 물으시니 공우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관운장과 홉사하나이다」고 아뢰니 곧 본 얼굴로 회복하시고 김 경학의 집에 이르러 공사를 행하셨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