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운1장11절 |
이 치안(李治安)이 상제의 예지에 감탄하여 상제를 쫓게 되었도다. 전주부중에 들어가시다가 어떤 사람이 황급하게 가는 것을 보고 그에게 「집으로 곧 돌아가라」고 이르시니라. 그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묻는도다. 상제께서 「그대가 지금 혼사로 중매인을 찾아가나 그가 그대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느니라. 그리고 오늘 중매인을 만나서 결정하지 않으면 그 일은 허사가 되리라」 하시니라. 그 사람이 매우 경탄하여 일러주신 대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니 과연 중매인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도다. 그 후 그 사람은 감복하여 상제를 찾아뵈니 이 사람이 바로 이 치안이니라. |
교운1장12절 |
김 병욱은 계묘(癸卯)년 四월부터 남원(南原)의 세금을 거두는 관직에 있게 되었도다. 이때에 박 영효(朴泳孝)가 일본(日本)에 망명하여 혁명을 도모하고 병욱이 또 그에 연루하였도다. 관은 그 당원을 체포하기로 정하고 八월에 포교가 서울로부터 남원으로 내려와서 병욱을 찾았도다. 전주 군수 권 직상이 병욱의 거처를 알기 위해 포교를 전주에서 남원으로 보냈도다. 그 전날 미리 상제께서 남원에 가셔서 병욱을 숙소의 문 바깥에 불러내시고 그로 하여금 수합한 세금을 숙소 주인에게 보관시키고 가죽신 대신에 짚신을 신게 하고 밭둑과 언덕을 걸으시니 병욱은 묵묵히 뒤만 따랐도다. 한 주막에서 점심을 끝내시고 다시 걸어가시다가 그의 선산 밑에 이르니 때는 이미 저물었도다. 그제서야 상제께서 그를 돌아보시고 묘소를 물으시니 바로 이곳이라고 그가 아뢰니 상제께서 또 묘형을 물으시니 「와우형(臥牛形)입니다」고 여쭈는지라. 말씀하시되 「그러면 소 우는 소리를 들어야 참이 되리라」 하시고 그 자리에 앉아 기다리시니 산 아래서 소 우는 소리가 나는도다. 병욱이 소의 울음소리를 아뢰니 상제께서 「먼 데서 들리면 소용이 없나니라」 하시고 한참 있으니 이상하게도 한 사람이 소를 몰고 묘 앞으로 지나가는데 소가 크게 우는도다. 상제께서 가라사대 「혈음(穴蔭)이 이미 동하였도다」 하시고 자리를 떠서 그 산소의 재실로 내려가 이곳에서 그날 밤을 새우시니라. 이튿날 상제께서 묘지기를 남원에 보내어 형세를 알아보게 하셨도다. 그는 남원에 갔다 와서 서울 포교가 병욱을 수색함을 아뢰니 이때 비로소 병욱이 깨닫고 크게 두려워하여 몸 둘 곳을 모르도다. 상제께서 다시 묘지기에게 여자가 타는 가마를 마련케 하고 병욱을 거기에 태우고 전주 상관(上關) 좁은 목에 이르러 병욱으로 하여금 먼저 서 원규의 집에 가서 정세를 자세히 살피게 하시니라. 그가 먼저 원규의 집에 들어서니 원규가 몹시 놀라면서 「그대가 어떻게 사지를 벗어났으며 또 어떻게 하려고 이런 위지에 들어섰느냐. 너무나 급한 화이기에 미처 연락할 새가 없었노라. 여러 친구와 그대의 가족들이 근심 걱정하는 중이니라」고 말하는도다. 병욱은 포교들이 전주를 떠나 남원으로 향하고 상제와 자기가 남원을 벗어나온 때가 겨우 한나절 사이밖에 되지 않는 것을 원규로부터 듣고 상제께서 천신이심에 탄복하여 마지 아니하는도다. 포교는 남원에 이르러 병욱을 수색하다가 찾지 못하고 전주에 되돌아와서 군수 권 직상을 조르고 각처에 게시하거나 훈령을 내려 병욱을 잡아들이게 하는 중이었도다. |
교운1장13절 |
병욱은 서 원규의 약국이 서천교(西川橋) 네거리의 번화한 곳임을 몹시 걱정 근심하였으되 상제께서 나중에 찾아오셔서 병욱에게 근심 말라고 이르시니라. 상제께서 병욱을 데리시고 왕래하시면서 거리에서 병욱의 이름을 높이 부르시니 그는 더욱 당황하여 모골이 송연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여러 사람을 이곳저곳에서 만났으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도다. |
교운1장14절 |
그 후에 상제께서 병욱을 장 흥해의 집으로 옮기고 그곳에 석 달 동안 머물게 하셨도다. 석 달이 지나서 상제께서 병욱에게 마음을 놓으라고 이르시니라. 일로전운(日露戰雲)이 급박하여 일병이 국토를 통과하고 국금을 해제한 때가 되니 박 영효에 대한 조정의 혐의도 풀렸도다. |
교운1장15절 |
이해 七월에 동학당원들이 원평에 모였도다. 김 형렬이 상제를 뵈옵고자 이곳을 지나다가 동학당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상제를 찾아뵈옵고 그 사실을 아뢰니 상제께서 그 모임의 취지와 행동을 알아 오도록 그를 원평으로 보내시니라. 그는 원평에서 그것이 일진회의 모임이고 보국안민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대회 장소가 충남(忠南) 강경(江景)임을 탐지하고 상제께 되돌아가서 사실을 아뢰었도다. 이 사실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그네들로 하여금 앞으로 갑오(甲午)와 같은 약탈의 민폐를 없애고 저희들 각자가 자기의 재산을 쓰게 하리라. 내가 먼저 모범을 지어야 하리라」 말씀하시고 본댁의 살림살이와 약간의 전답을 팔아 그 돈으로 전주부중에 가셔서 지나가는 걸인에게 나누어 주시니라. 이로부터 일진회원들은 약탈하지 않고 자기 재산으로 행동하니라. 이 일로써 전주부민들은 상제께서 하시는 일에 감복하면서 공경심을 높였도다. |
교운1장16절 |
원일이 자기 집에 상제를 모시고 성인의 도와 웅패의 술을 말씀 들었도다. 그것은 이러하였도다. 「제생 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요 재민 혁세(災民革世)는 웅패의 술이라. 벌써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 지 오래되었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로써 화민 정세하리라.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바로 잡으라. 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호생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어찌 억조 창생을 죽이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합당하리오.」 |
교운1장17절 |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화하여 삼계의 역사에 붙여 신인(神人)의 해원을 풀려는 것이나, 현하의 학교 교육이 배우는 자로 하여금 관리 봉록 등 비열한 공리에만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성도하게 되었느니라」 하시고 말씀을 마치셨도다. |
교운1장18절 |
그 후 광찬(光贊)과 형렬(亨烈)이 상제와 함께 전주(全州)에 동행하였느니라. 김 석(金碩)이란 자가 문하에 입도하게 되었도다. 입도에 앞서 상제께서 광찬과 형렬을 좌우에 두고 청수를 앞에 놓고 두 사람에게 태을주(太乙呪)를 스물한 번 읽게 하신 후에 석으로 하여금 읽게 하셨도다. |
교운1장19절 |
김 광찬과 신 원일이 상제를 모시고 있던 정미년 정월 어느 날 상제께서는 그들에게 「귀신은 진리에 지극하니 귀신과 함께 천지공사를 판단하노라」 하시면서 벽에 글을 다음과 같이 써 붙이셨도다. 知事萬忘不世永定化造主天侍 至 氣 今 至 師 願 法 爲 大 降 全 慶 州 州 銅 龍 谷 潭 解 報 冤 恩 神 神 日 月 年 |
교운1장20절 |
종도들이 모인 곳에서 상제께서 三월 어느 날 가라사대 「지금은 신명 해원시대니라. 동일한 五十년 공부에 어떤 사람을 해원하리오. 최 제우는 경신(庚申)에 득도하여 시천주(侍天呪)를 얻었는바 기유(己酉)까지 五十년이 되니라. 충남(忠南) 비인(庇仁) 사람 김 경흔(金京訢)은 五十년 공부로 태을주(太乙呪)를 얻었으되 그 주문을 신명으로부터 얻을 때에 그 주문으로써 많은 사람을 살리라는 명을 받았느니라」고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이 두 사람 중의 누구를 해원하리오」라고 물으시니 시좌하고 있던 종도들 중에서 광찬이 「상제님의 처분을 기다리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시천주는 이미 행세되었고 태을주를 쓰리라」 하시고 읽어 가르치시니 그 주문은 이러하였도다. 「吽哆吽哆 太乙天上元君 吽哩哆㖿都來 吽哩喊哩娑婆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