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록4장1절 |
경석(京石)의 아우 윤경(輪京)이 구릿골에 계시는 상제를 찾아와서 배알하는도다. 상제께서 「천지에서 현무가사를 부르니 네 형의 기운을 써야 할지니 네 형에게 구설인후(口舌咽喉)를 움직이지 말고 동학의 시천주(侍天呪)를 암송하되 기거동작에 잠시도 쉬지 말게 하라」고 분부하셨도다. |
행록4장2절 |
안 필성이 상제를 모시기를 기뻐하여 종종 음식을 대접하였도다. 어느 날 그가 동곡(銅谷) 앞 팥거리에서 상제를 만나 대접하려고 하는지라. 상제께서 그 뜻을 알아차리시고 「내가 반찬을 마련하리라」 하시고 못을 휘어서 낚시를 만들어 팥거리 근처에 있는 작은 웅덩이에 던지시니 잉어와 가물치가 걸렸도다. 이것으로써 반찬을 만들어 잡수시면서 필성과 함께 한때를 보내셨도다. |
행록4장3절 |
상제께서 장 성원(張成遠)에게 글을 써서 봉하여 주시면서 훗날에 보라고 이르셨는데 그 글은 이러하였도다. 蔣驕者敗 見機而作 |
행록4장4절 |
하루는 김 송환(金松煥)이 상제께 여쭈기를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나이까.」 상제께서 「있느니라」고 대답하시니라. 또 그가 여쭈기를 「그 위에 또 있나이까.」 상제께서 「또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도다. 이와 같이 아홉 번을 대답하시고 「그만 알아두라」고 이르셨도다. 상제께서 후일에 그를 만사불성(萬事不成)이라 평하셨나니라. |
행록4장5절 |
상제께서 김 송환에게 시 한 수를 외워 주셨도다. 少年才氣拔天摩 手把龍泉幾歲磨 石上梧桐知發響 音中律呂有餘和 口傳三代詩書敎 文起春秋道德波 皮幣已成賢士價 賈生何事怨長沙 |
행록4장6절 |
상제께서 무신년 초에 본댁에서 태인에 가셨도다. 상제께서 자주 태인에 머물고 계신 것은 도창현(道昌峴)이 있기 때문이었나니라. 그곳에 신 경원(辛京元)ㆍ최 내경(崔乃敬)ㆍ최 창조(崔昌祚)ㆍ김 경학(金京學) 등의 종도들이 살고 있었도다. |
행록4장7절 |
어느 날 상제께서 식사 시간이 지나서 최 창조의 집에 이르셨도다. 그의 아내는 상제께서 드나드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노라. 이날도 밥상 차리기를 싫어하는지라. 상제께서 창조에게 가라사대 「도가에서는 반드시 아내의 마음을 잘 돌려 모든 일에 어긋남이 없게 하고 순종하여야 복되나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아내가 문밖에서 엿듣고 보이지 않는 사람의 속마음을 보신 듯이 살피심에 놀라 마음을 바로 잡으니라. |
행록4장8절 |
상제께서 최 창조의 집에서 종도 수십 명을 둘러앉히고 각기 세 글자씩을 부르게 하시니라. 종도들은 천자문의 첫 글자부터 불러오다가 최 덕겸(崔德兼)이 일(日) 자를 부를 때 상제께서 말씀하시니라. 「덕겸은 일본왕(日本王)도 좋아 보이는가보다」 하시며 「남을 따라 부르지 말고 각기 제 생각대로 부르라」 이르시니라. 이튿날 밤에 상제께서 덕겸으로 하여금 담뱃대의 진을 쑤셔 내되 한 번 잡아 놓치지 말고 뽑아서 문밖으로 버리게 하시니 그는 말씀하신 대로 진을 바깥에 버리자 온 마을의 개가 일시에 짖는도다. 덕겸이 신기하게 느껴 「어찌 개가 일제히 짖나이까」라고 여쭈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대신명(大神明)이 오는 까닭이니라.」 그가 「무슨 신명이니까」고 여쭈니 상제께서 「시두손님이니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나니라」고 일러 주셨도다. |
행록4장9절 |
상제께서 어느 날 공우를 데리시고 태인 보림면 장재동을 지나는 길가에서 묘(墓)를 보시고 공우에게 이르시니라. 「이 혈(穴)은 와우형(臥牛形)이나 금혈형(琴穴形)이라고 불리우니라. 그것은 혈명을 잘못 지어서 발음(發蔭)이 잘못되었느니라. 어디든지 혈명을 모르거든 용미(龍尾) 없이 조분(造墳)하였다가 명사에게 혈명을 지은 뒤에 용미를 달면 발음이 되나니라」 하셨도다. |
행록4장10절 |
종도들이 二월의 따뜻한 어느 날 상제와 함께 보리밭 길을 지날 때 「이 세상에 빈부의 차별이 있는지라. 곡식 중에 보리가 있어 그것을 먹을 때마다 괴로움을 겪는 사람이 있으니 보리를 없애야 먹는 데에나 차별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일치하리라」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니라. 상제께서 이야기를 수긍하시는 태도를 취하셨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