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등산 서석대 > 

 

광주의 진산 무등산(無等山)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무등산)

 

무등산(1,187m)은 광주시와 화순군, 담양시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정상으로 오를수록 험준한 돌산의 풍모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는 정상의 주상절리 서석대와 입석대에 이르면 절정을 이룬다.

'주상절리’하면 제주도 해안가 절벽을 떠올리지만, 고산지대에서 주상절리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무등산이다. 해발 1,017m에 자리한 입석대는 한면이 1∼2m이고, 높이가 10∼18m인 기둥 30여개가 동서로 늘어서 장관을 이룬다. 

육당 최남선은 남도의 산을 둘러보고 적은 산악순례기『심춘순례』에서 무등산 입석대를 ‘천연의 신궁’으로 묘사하였다. 옛날부터 제천단으로서 가뭄이나 전염병이 극심할 때 제를 지냈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좀 더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 거대한 병풍을 둘러쳐 놓은 듯한 서석대(해발 1,100m)는 저녁노을이 지면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반짝인다하여 ‘수정병풍’으로 불린다. 전체 규모는 입석대보다 훨씬 크고 장대하다. 천왕봉 남동쪽에 위치한 규봉은 큰 바위가 세 개 솟았다고 하여 삼존석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등산의 모양은 전형적인 ‘뫼 산(山)’자 형태를 띠고 멀리서 보면 두 팔을 벌리고 자식을 안아주려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이곳 사람들은 무등산을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한편 무등산과 지리산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건국을 반대하는 산신이 살아 무등산은 무정한 산이라 해서 ‘무정산’, 지리산은 굴복하지 않은 산이라 하여 ‘불복산’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반대한 산신만큼이나 광주사람들은 그런 무등산의 기개와 절의로 임진왜란때 의병운동의 기치를 드높였으며, 광주학생의거를 통해 일제의 탄압에 강력한 항거를 전개하였다. 

무등산은 마한 백제시대에는 ‘무돌’, ‘무당’, ‘무덤산’이라 불렀다. 무덤산은 그 모습이 마치 무덤처럼 둥글넓적하게 생겨서 불려졌다. 통일신라 이후 ‘무진악’, ‘무악’ 고려시대 때 ‘서석산’으로 불리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무등산’이라고 하였다. 

무등산의 전체적인 산세는 겹산이 아니고 산줄기와 골짜기가 뚜렷하지 않고 마치 커다란 둔덕과 같은 홑산이다. 무등산은 완만한 산세로 대부분이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태만상의 암석들이 정상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널려 있어 그 웅장함으로 인하여 전라도민의 신앙대상이 되어온 신산이라 믿고 있다. 

한편 무등산을 얘기하면 비운의 영웅 김덕령장군이 떠오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의병장이 되어 의병을 지휘하여 큰 공을 세웠으나 신하의 모함으로 죽게 되었다. 설화에 의하면 김덕령이“나를 죽이려면‘만고충신 효자 김덕령’이란 비를 써달라.”고 요구하여 그대로 하자,“내 다리 아래의 비늘을 뜯고 그곳을 세 번 때리면 죽는다.”고 알려 주어 죽음을 당했으며, 죽은 뒤 비문의 글자를 지우려고 해도 더욱 또렷해지자 그냥 두었다 한다. 

호남정맥은 세 번 솟았는데 시작인 장안산, 끝인 백운산, 그리고 한복판의 무등산에서 각각 1,000m가 넘는 용솟음을 한다. 전체적으로 '山' 자를 연상케 하는 호남정맥 흐름의 중심에 솟아 그 아래 골짜기마다 맑고 깊은 물을 품어 광주의 젖줄 노릇을 하는 무등산은 그 위치나 산세에서부터 으뜸으로 도시를 품기에 부족함이 없는 산이다. 

또한 무등산은 높이를 헤아릴 수 없고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등급을 매기고 싶어도 매길 수 없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무등산의 무등은 불교와 인연이 있는 말인데,『반야심경』에서 부처가 절대평등의 깨달음, 곧‘무등등(無等等)’을 말한 대목에서 유래한다. 절대평등의 무등은 평등이란 말을 쓸모없게 하는 완전한 평등을 뜻한다.

이것은 비단 불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종교진리가 추구하고 있는 바이기도하다. 선천의 상극에 의한 원한이 발생한 배경에는 도수(度數)에 의한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차별에 의한 것이 많다. 

차별의 세계에서 무등(無等)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어렵듯이 선천의 상극적 상황에서 후천 상생의 사회로 나아가는 길은 분명코 험난한 것이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하더라도 우리는 쉼 없이 나아가야 한다. 인류역사가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개척정신과 끈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천의 상극세상을 화평의 상생(相生)세계로 만들기 위한 상제님의 뜻은 천지 공사에 의해 나타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 무등산과 관련되어 있다. 

 

   상제님께서는『이마두를 초혼(招魂)하여 광주(光州) 무등산(無等山) 상제봉조(上帝奉詔)에 장사하고…』(예시 66절)라고 말씀하셨다. 

 

이마두는 서양 사람으로서 동양에 지상천국을 건설하려 했으나 유교의 벽이 너무 높아 실패로 끝났다. 그의 못다 이룬 꿈을 상제님께서는 공사로써 처결하셨으니 곧 이마두의 초혼이다. 이마두에 대한 초혼공사는 이마두의 원을 풀어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상제님 공사에 의해 이마두가 상제님의 후천선경(後天仙境) 건설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모든 고생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듯이 후천선경(後天仙境) 이 이루어지면 우리의 고생도 다 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모든 사람들이 마치 먼데서 무등산의 외모에서 풍기는 둥그스름한 모습을 보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다정다감함을 맛보듯이 후천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평등을 누릴 것이다. 도인들의 영화와 복록은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대순회보』포천수도장, 제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