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 채석강 , 우: 적벽강>
산이면서 반도인 변산(邊山)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변산은 산(山)인 동시에 반도(半島)다. 규모가 제법 커서 변산면(邊山面)·하서면(下西面)·상서면(上西面)·진서면(鎭西面)에 걸쳐 있다. 노령산맥이 서해로 뻗어 내린 변산은 해발 508m의 의상봉을 비롯해 신선봉, 쌍선봉, 관음봉, 옥녀봉 등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와 개암사, 내소사, 월명암 등의 유서 깊은 고찰이 있다. 또 직소폭포, 봉래구곡, 낙조대, 채석강, 적벽강 등의 절경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변산은 자고로 천부(天府)로 불렸다”고 한다. 천부란 산물이 풍부한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이 고장에서는“살아서는 변산이고, 죽어 묻힐 곳은 순창(生居邊山 死去淳昌)”이란 말이 있을 만큼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왔다.
변산은 또한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봉래산이라고도 불리어 졌는데, 삼신산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봉래산(蓬萊山), 영주산(瀛洲山), 방장산(方丈山)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삼신산은 금강산(봉래산), 한라산(영주산), 지리산(방장산)이 있고 상제께서 강세하신 전라도에도 삼신산이 있는데, 부안의 변산(봉래산), 정읍의 두승산(영주산), 고창의 방장산이다.
변산은 서해안을 따라 겹겹이 포개어진 산봉우리를 외변산이라 하고, 내륙으로 뻗은 골짜기와 봉우리는 내변산이라 한다. 외변산에는 격포리(格浦里) 해안의 채석강(彩石江)과 적벽강(赤壁江)이 특히 유명하다. 이 두 곳의 명칭은 강(江)이지만 실제는 해안의 바위벽이다. 채석강은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며 노닐다가, 물에 비친 달빛에 반하여 물에 뛰어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졌고, 적벽강은 소동파(蘇東坡)가 노닐던 『삼국지』의“적벽대전”으로 유명한 적벽강과 비슷하다고 하여 그렇게 불리어졌다. 그만큼 경관이 수려하다는 뜻이다.
변산의 해안풍경이 그처럼 절경이라 해도 정작 변산을 전국적인 길지로 이름나게 한 것은 산속에 위치한 사찰들이다. 외변산 상서면 감교리의 개암사(開岩寺)는 대웅전(보물 제 292호)과 신라의 원효가 수행한 곳이라 하는 원효방이 있다. 그런가 하면 변산면 석포리에 위치한 내소사(來蘇寺) 역시 신라 때의 고찰인데 대웅보전(보물 제291호)·고려 동종(보물 제277호)·법화경절본사본(法華經折本寫本 보물 제278호) 등 문화재가 많다. 특히 내소사 경내의 전나무 숲은 울창하기가 전국 최고라 하고 이 절의 저녁 종소리는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고 한다.
내변산은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깊은 계곡이 여럿이고 나무 또한 울창해 풍광이 곱다. 그 중 산내면 중계리(中溪里)에는 신라 때 창건됐다는 월명암(月明庵)이 있다. 변산의 제2봉인 쌍선봉(498m) 중턱에 자리 잡은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아침 바다의 물안개는 변산 8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암자 뒤편의 낙조대(448m) 역시 서해로 지는 일몰의 풍경이 일품이라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변산은 상제께서 해왕도수를 보신 곳이며, 도주께서 공부하시면서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설법하신 곳이기도 하다. 우선 해왕도수를 알아보면 상제께서는 각 처에서 정기를 뽑는 공사를 행하셨는데 그 중 회문산은 산군(山君), 변산은 해왕(海王)에 해당 된다. 회문산에 이십 사혈이 있고 부안 변산에 이십 사혈이 있으니, 이것은 회문산의 혈수의 상대가 되며 해변에 있어 해왕(海王)의 도수에 응하니 상제께서 그 정기를 뽑으셨다.(공사 제3장 6절 참조)
그리고 도주께서 공부하시면서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설법하신 곳이 이 변산에 위치한 굴바위이다. 굴바위를 끼고 있는 지역이 보안면 우동리(牛洞里)이다. 이곳에서 실학의 선구자인 반계 류형원(磻溪 柳馨遠)은 이『반계수록』26권을 펴내어 다산 정약용, 성호 이익 등 후기 실학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허균도 이곳에서로 당시 사회의 모순과 아픔을『홍길동』이란 소설로 그려냈고, 연암 박지원의『허생전』도 이곳에서 탄생하였다.
우동리에서 서북쪽으로 저수지를 지나 회양재를 넘다보면 굴바위가 있다. 이 굴바위 입구는 호리병 모양 같이 생겼다. 이곳은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이 은거한 곳이기도 하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천연적으로 뚫린 굴의 깊이는 30m 쯤 되며, 높이는 약 8m나 된다. 굴이 끝나는 부분 중단에는 마치 아이가 웅크린 듯한 모습으로 움푹 파여 있다. 천상 여인의 자궁을 연상하게 하는 형태이다. 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끝까지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불을 때면 그 연기가 열흘 후 변산해수욕장 해창으로 나온다고 전해지고 있다. 굴 안쪽에서 바깥을 본 모습은 제주도의 산방굴이나 설악산의 금강굴과 흡사하다.
또한 변산에는 개암사와 미륵신앙의 성지가 되는 불사의 방이 있다. 지금의 개암사는 634년(백제 무왕 35년)에 묘련왕사가 변한의 궁전을 절로 고쳐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라 하고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통일신라 676년(문무왕 16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개암사를 다시 지었다. 그 뒤 여러 선사가 중수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폐허가 된것을 1658년(효종 9년) 밀영(密英), 혜징(慧澄) 두 선사가 계효선사(繼孝禪師)의 중창사업을 계승하여 대법당을 지었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팔각지붕으로, 1783년(정조 2년)에 승담 선사가 중수하였고,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암사에서 보면 8백 미터 거리에 울금바위(禹金岩)가 우뚝 솟아 있다. 이 암벽에는 모두 3개의 동굴이 있고 그 중 원효가 굴속에서 기거하며 수도했다 하여 원효방(또는 불사의방: 不思義房)으로 불리는 굴이 있는데 그 굴 밑에서는 만년필 굵기의 도랑이 굴 안쪽으로부터 패어져 있고 어른 주먹 2개를 합친 것 정도의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여기에 물이 고인다. 바위의 밑 부분이고 산의 능선과 수평을 이루는 곳이니 물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인지 신기하다. 전하는 말로는 원래 물이 없어 곤란했는데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해 오고 나서부터 샘이 솟아났다는 것이다. 이 울금바위 안의 불사의방은 금산사 미륵불을 창건한 진표율사의 수도처 이기도 하다. 율사는 3년 동안 3업[신구의업(身·口·意業, 몸뚱이·언어·의지의 작용]을 닦았다. 아울러 망신참법(亡身懺法, 몸을 희생시키는 참회법)에도 힘써 5륜[두 무릎, 두 손, 머리의 5체(體)]을 바위에 마구 부딪쳐 무릎과 손이 깨져 피가 비오듯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장보살(地藏菩薩)로부터 정계(淨戒)를 받은 곳이다. 진표율사는 정계에 만족하지 않고 부근의 영산사(靈山寺)로 수행 장소를 옮겨 미륵보살 친견을 소원으로 정진을 계속 하였고, 마침내 미륵보살이 그의 앞에 나타나 신심을 칭찬하고 점찰경(占察經) 2권과 증과간자(證果簡子·수행으로 얻은 果와 점치는 대쪽) 189개를 주게된다. 그는 미륵보살의 수기(授記)를 받은 셈이다. 762년(경덕왕 21년) 신도들을 이끌고 모악산 금산사(金山寺)에 16척이나 되는 거대한 미륵보살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2년 뒤 마침내 미륵상은 완성되었다.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진표율사에 관한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변산에서 미륵신앙이 출범했다는 점이다. 그 뒤 미륵신앙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 특히 난세에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고, 금산사는 우리에게 미륵불과 솥의 양산(兩山)의 진리를 밝혀주고 있다.
예로부터 유서 깊은 이곳 길지에 1919년 도주께서 이 상우를 데리고 부안 변산(扶安邊山) 굴 바위에 이르러 공부하시면서 상제의 대순하신 진리를 사람들에게 설법하시니 이에 따르고자 하는 무리가 이백이 넘었다고 한다(교운 제2장 19절 참조). 『전경』공사 제2장 27절에“무신년 칠월에 이르러 상제께서 원일을 이끄시고 부안 변산 우금암 아래에 있는 개암사에 가시니라. 그 때 상제께서 원일에게 삶은 쇠머리 한 개와 술 한 병과 청수 한 그릇을 방안에 차리고 쇠머리를 청수 앞에 진설하게 하신 후에 원일을 그 앞에 꿇어앉히고 성냥 세 개비를 그 청수에 넣으시니라. 이 때 갑자기 풍우가 크게 일어나고 홍수가 창일하는도다. 상제께서 원일에게 「이제 청수 한 동이에 성냥 한 갑을 넣으면 천지가 수국(水國)이 될지니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우니 그리 알지어다. 만일 이것을 때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해만 끼칠 뿐이니 그렇게 믿고 기다려라」고 일러주시고 진설케 하신 것을 모두 거두니 곧 풍우가 그쳤도다”와 같다. 개암사는 상제님께서 개벽도수를 보신 곳으로 개벽의 기운이 서려있는 곳이다. 개암사에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진표율사가 득도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난 일심이다. 우리가 수도하는 목적은 삼계를 개조하여 후천선경을 열기 위한 것이다. 모든 천지공사에는 상제님께서 원일에게 보여 주신 바와 같이 그에 따르는 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진표율사와 같은 일심을 갖고 수도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대순회보』포천수도장, 제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