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적천사 도솔암 (淸道 磧川寺 兜率庵)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동길 304 적천사)
적천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서 옛적에 제생원(濟生院)이 있던 곳이라 하여 원(院)리로 불리는 고장의 화악산(華岳山)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대구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청도에서 밀양방향으로 20분 정도 가다보면 원리마을 표지판이 보이고 샛길을 따라 차편으로 15분정도 올라가면 적천사가 나온다.
적천사를 품고 있는 화악산(932m)은 경상남ㆍ북도의 경계를 가르고 있으며, 낙동정맥의 정기를 이어받은 비슬기맥에 우뚝솟은 준령의 하나로 동쪽에는 철마산(鐵馬山・630m)이 서쪽에는 천왕산(天王山・619m) 북쪽에는 청도군의 진산인 남산(南山,일명 오산・870m)이 솟아있어 이 일대가 큰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적천사는 신라 문무왕 4년(664년)에 원효(元曉)가 수도하기 위하여 토굴을 지음으로써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던 것이 흥덕왕 3년(828년)에 흥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창하였고, 고승 혜철(惠哲)이 수행한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명종 5년(1175년)에 대가람으로 중창하게 되는데 동북쪽에 영산전(靈山殿)을 세우고 오백성중[아라한(阿羅漢)]을 모시는 한편, 오백대중이 상주하는 대가람으로 참선(不立文字) 수행케 함으로써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했다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건물의 다수가 병화(兵火)로 소실되었고 현종 5년(1664년)에 사액(賜額)으로 중수(重修)하였는데, 이때 사천왕의좌상(四天王椅坐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을 사천왕문(四天王門)에 조성하였다 한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한 천왕문ㆍ조계문이 있고, 대웅전 좌우에 적묵당(寂默堂)과 명부전(冥府殿), 그리고 대웅전 뒤쪽으로 조사전(租師殿)과 영산전(靈山殿)이 있다. 그밖에 독성각(獨聖閣)과 사리탑 등 18기의 고승들의 부도가 그 많은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도솔암, 은적암, 백련암등이 있었다고 하나 소실되고 도솔암만이 현존한다.
절 입구를 지키고 선 거대한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은행나무의 대표 격으로 '천연기념물 제402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그만큼 위용이 대단하다. 고려 명종 5년(1175년)에 보조국사가 적천사를 다시 지은 후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은 것이 자라서 이처럼 거목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온다. 수령은 약 일천년의 세월로 추정되고 높이 28m, 둘레는 11m로 어른 넷이 둥글게 손을 맞잡아야 가까스로 안아볼 수 있을 정도다. 강화도 전등사의 은행나무와 달리 적천사의 은행나무는 암나무인 까닭에 가을이 되면 무수히 많은 열매를 맺는다. 매년 9월이 되면, 이 나무 아래에서 '은행나무 별빛 축제'가 열려 지역민들에게 즐길 거리를 선사하기도 한다.
대웅전 뒤로 약 25분 가량 오르면 산내 암자인 도솔암을 볼 수가 있다. 산을 올라가다보면 길손의 방문을 알았을까? 목탁 두드리는 소리 비슷하게 딱따구리가 유난히 나무에 부리를 쪼고 있었다. 도솔암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나그네의 목을 축여 줄 청담옥수 같은 맑은 샘물이 반긴다. 도솔암에 도착하여 주위를 살펴보니 당시 도주님께서 공부하셨던 칠성각은 없어지고 삼성각(三聖閣)이 자리 잡고 있다. 1925년 도주님께서 무극도를 창도하기 이전에 주로 경남 밀양과 청도에서 공부하셨다. 그 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주께서는 계해년(1923년)에 경남 청도군 유천의 박동락의 집에서 단도수(壇度數)를 행하시고(교운 2장 27절), 그 해 9월에 청도 화악산 적천사의 도솔암에 가셔서 100일간의 단도수를 행하셨다. 도주께서는 그해 10월부터 다음해 2월 중순까지 청도 적천사의 도솔암에 있는 칠성각 뒤에 돌단을 높이 쌓게 하신 후 24방위를 정하고 천지신명을 응기케 하고, 공부시간은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로 정하여 1분 1초도 어김없이 넉 달 동안 계속하셨는데, 이때의 공부를 ‘단도수’라 하셨다(교운 2장 28절). 이재신원(利在新元) 계해년을 맞이하여 인세에 새로운 가르침이 나와야 할 시점에 도주께서 단도수를 보셨다는 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 크다 하겠다. 이 단도수에 대한 설명은 태극진경에도 언급되어있다.
“단도수(壇度數)의 단(壇)은 법단(法壇), 제단(祭壇)의 단이며, 단(檀)과 같은 뜻이므로 단군(檀君)의 명호(名號)도 이를 취함이니, 나의 이 도수로써 해원(解冤)의 대운(大運)이 제래(齊來)하게 되리라”(태극진경 3장 55절).
단군(檀君)은 정치와 교화를 함께 맡은 제왕을 말한다. 즉, 다스리는 제왕으로서 법단(法壇)에 올랐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사장으로서 제단(祭壇)에 올랐으니 ‘단군’이다. 다시 말해서 ‘단(壇)’은 바로‘창생을 교화하고 다스리는 자리’를 뜻한다. 따라서 도주께서 보신 단도수(壇度數)에서의 단(壇)은 제왕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제단(祭壇)’으로서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는‘미륵용화세상을 다스리시는 제왕’이신 미륵불(彌勒佛)께서 설법(교화)으로 중생을 깨우쳐 용화세상으로 인도한다는‘법단(法壇)’으로서의 의미가 더 깊다고 본다.
적천사는 진표율사의 제자인 영심으로부터 간자(竿子)를 받은 심지왕사가 중창한 사찰이므로 미륵도량(彌勒道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건립하고 중찬한 모악산 금산사, 속리산 법주사, 금강산 발연사가 모두 미륵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왕사는 간자를 받고 미륵도량으로서 대구 동화사를 중건한 뒤 이곳으로 와서 적천사를 중창하였다.
도주께서 많은 미륵사찰 중에서도 청도 적천사에서 단도수를 보신 이유는 ‘도솔암’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솔암은 도솔천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도솔천은 바로 미륵보살이‘법단에 높이 앉아 주야로 천인대중을 교화’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도주께서 도솔암에서 보신 단도수는 앞으로 미륵보살이 하생(下生)하여 미륵불로 성불(成佛)하고, 이후 중생들을 깨우쳐 미륵용화세상으로 인도하기 위해 교화(敎化)하실 수 있는 법단을 마련하는 도수를 보신 곳이다.
한편 강증산 상제께서도‘도솔(兜率)에 관한 도수’를 보셨음이「현무경(玄武經)」(교운 1장 66절)에 나타나 있다.
冠旺 관왕.
兜率 虛無寂滅以詔 도솔 허무적멸이조.
여기서 도솔은 관왕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관왕은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다는 완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을 종교에 맞추어보면 도교는 모체에서 자라는 아기에게 필수적인 것이고, 불교는 그 아기가 모체를 떠나 대기 속에서 양생되는데 필요한 것이고, 이후 성장하여 만사를 분간할 때에 필요한 것이 유교이고, 이제 다 자라서 부모를 모실만큼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관왕이 필연적인 라는 것이다. 상제께서는 관왕이 새로운 종교원리라 하여 “冠旺 兜率 虛無寂滅以詔”로 표현하셨다. 즉 관왕이 과거의 선 유 불(仙・儒・佛)이 제시한 허무,적멸, 이조를 이끌어 미래의 재창조로 지향케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관왕은 인류가 역사 말기에 이르러 전개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성인이 된 인류에게 새 살림을 꾸려주고 5만년을 인도하는 이제(理濟)인 것이다. 이 관왕에서 펼쳐질 세계가 곧 선경(仙境)이며, 지상위에 건설되는 이상세계요. 또 모두가 소망하는 지상천국(地上天國)이다. 즉 도솔천의 미륵세상과 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주님께서 청도 적천사의 도솔암에서 단도수를 보신 것은, 바로 이 땅에 출세(出世)하시는 미륵께서 중생들을 교화하실 법단을 마련하신 공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도주께서는 적천사 도솔암에서 단도수를 보신 이후, 1925년 4월 15일에 완공된 전북 구태인 무극도장에 영대(靈臺)와 함께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봉안한 도솔궁(兜率宮)을 건립하셨다. 이것은 바로 미륵께서 이 땅에 출세(出世)하시어 진멸지경에 처한 중생들을 깨우쳐 미륵용화세상으로 인도하기 위해 교화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도주께서는 미륵불이 출세하여 중생들을 교화할 수 있는 모든 기틀과 법을 이 단도수로부터 마련해 나간 것이 아닌가 한다. 신라 삼국통일의 정신이념인 화랑정신과 대한민국 근대화의 초석이 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인 청도는 산이 푸르고 물이 맑아 인심이 순박한 아름다운 고장임과 동시에 상제께서 공사보신 적천사를 품고 있는 뜻 깊은 고장으로 왕래한 보람이 컸다.
*불립문자(不立文字):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
『대순회보』포천수도장, 제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