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一心)
우리가 도를 닦아 수도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가장 많이 말하고 듣는 말은 일심입니다. 일심이란 말의 뜻은 한마음, 통일된 마음, 변함없는 한결같은 마음, 본연의 청정한 마음, 불교의 진여(眞如, 우주만물의 실체)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심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일심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원래 일심은 우주만법의 수용처로 크다거나 작다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일방적으로 동적인 것이나 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것을 무엇으로 정확하게 정의 할 수는 없지만 그냥 한마음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
일심 사상을 우리나라 불교 속에 정착시키고 독특한 사상으로 발전시킨 이는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이다. 원효는 일심의 경지를 청운(靑雲)과 대해(大海)에 비유하였다. 그것은 마치 봉황이 청운 위를 날아가면서 산악의 비천함을 알게 되고 하백(河伯)이 대해를 굽어보며 산하에 협소함을 부끄러이 여기듯, 도를 이루고자 하는 자가 일심의 세계에 들어가면 비로소 앞서 배웠던 모든 학문이 치졸함을 깨닫게 될 것이라 하였다.
요약하면 불교의 일심(一心)은 깨우쳐야만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상제님의 일심은 어떠한가? 상제님께서는 마음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마음이란 귀신의 중추기관이요 문호요 도로이다. 추기를 열고 닫고 문호를 출입하고 도로를 왕래하는 기관이며 혹은 선한 것도 있고 혹은 악한 것도 있다. 선한 것은 스승으로 삼고 악한 것은 고친다. 내 마음에 추기요 문호요 도로는 천지보다 크다”고 하셨다(행록 제3장 44절).
그러므로 마음의 상태 색깔에 따라 이와 유사한 기운을 가진 신이 응한다. 즉 순일하고 청정한 마음을 가진 선신이 응하면 점차 밝은 곳으로 향하고, 반대로 원망, 번뇌, 자만 등의 어두운 마음을 갖게 되면 사신이나 척신이 응한다. 때문에 자기 마음의 변화를 자기도 발견하지 못하고 자칫 헛된 기운에 휘말려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일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자리로 다가오는 욕심과 자만, 허영과 번뇌에서 벗어나 매사를 보고 듣고 처리하는 과정의 편벽됨이 없이 사심을 버리고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성경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 일심을 갖는다고 하는 것이 마음 본체의 자각이라면 우리의 일상의식으로는 자각할 수 없다. 그것은 일상의식이 주관과 객관, 너와 나로 이원화되어 있는 마음으로 항상 시비분별, 선악투쟁, 번뇌망상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은 천성 그대로의 본성인 양심과 물욕에 사로잡힌 사심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일심 수도는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하는 과정인 것이다. 사심을 버리는 과정에서 수심연성(修心煉性) 세기연질(洗氣煉質)이 양심을 회복하는 과정이며 인륜도덕과 경위를 밝혀 나가는 것이다. 양심은 천성으로 도덕적 가치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천리가 이미 인간에게 내려와 있는데 인간은 물욕에 젖어 본래의 성품이 발현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사심을 발동시키는 물욕은 단순히 물질적인 욕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인체에 대한 욕망에서 오는 모든 유형의 마음을 포함한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는 자아의식에서 비롯된 시비심, 시기질투심, 명예욕, 권력욕 등 모든 상극적인 마음이 포함된다. 이러한 자의식이 있으면 나와 남을 비교하는 마음이 생기고 비교하는 데서 오는 우월감과 열등감, 여기서 온갖 부정적인 마음이 파생되어 나온다. 그러므로 물욕에서 비롯된 사심이 소멸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부정적인 마음이 발생하므로 결국 무사지공한 마음이 될 수 없게 되고 천성인 양심 속에 내재된 도덕적 가치가 발현될 수 없게 된다.
물욕에서 발동하는 사심은 외부적인 환경이 바뀌면 따라서 바뀌는 성향이 있다. 즉 변함없는 마음으로 오로지 무사지공하게 되어 양심만의 발로인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고 사심이 범접하지 않았을 때 일심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인간의 복록은 내가 맡았으나 맡겨 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 주리라” (교법 제2장 4절).
“이제 범사에 성공이 없음은 한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한 마음만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교법 제2장 5절)
“진실로 마음을 간직하기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교법 제2장 6절).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 하느니라.”(교법 제2장 7절).
“내가 비록 서촉에 있을지라도 일심을 가지는 자에게 빠짐없이 찾으리라.” (교법 제2장 13절).
“일심의 힘이 크니라. 같은 탄알 밑에서 임 낙안(林樂安)은 죽고 최 면암(崔勉菴)은 살았느니라. 이것은 일심의 힘으로 인함이니라. 일심을 가진자는 한 손가락을 튕겨도 능히 만리 밖에 있는 군함을 물리치리라.”(교법 제3장 20절).
위 상제님의 여러 말씀과 같이 일심을 모으면 천지신명을 감동케 하여 움직일 수 있으며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실현되는 만복을 구하는 근원이 된다. 그러기에 상제님을 향한 일심을 가진 자는 천지신명도 두려워하며 상제님께서 빠짐없이 돌보신다고 하셨다.
신명공판(神明公判)이란 운수를 받는 자리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고 수도 과정에서 먼저 받게 되므로, 상제께서도 “나는 해마(解魔)를 위주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伏魔)의 발동이 있으리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고 타이르셨도다.”(교법 제2장 15절)는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항상 마음에 새겨 성·경·신을 다 하여야 하겠습니다(지침, 94p.).
우리는 수많은 번뇌 속에서도 상제님의 진리에 맞게 믿고 수도하면 그것이 일심이라는 것입니다. 일심은 마음의 본체인 심령의 통일과 인륜을 바로 행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법을 수행하여 상제님께서 약속하신 천강(天降)을 잘 모시어 구제창생 하는 큰 일꾼이 되는데 있습니다.
『대순회보』포천수도장, 제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