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상: 마하사 대웅전,  좌,하: 요사채(도주님께서 불음불식 공부하신 곳, 화살표)  우: 마하사의 고개숙인 불상(범어사 성보박물관 전시) >

 

 

부산 금련산(金蓮山) 마하사(摩訶寺)

(부산광역시 연제구 봉수로 138 마하사)

 

금련산은 부산의 동남해안에 뻗어 있는 황령산의 서북쪽 여러 산봉 중 하나로, 한자표기를 해석하면‘금빛 연꽃 산’이란 뜻이다. 우리 산천에는 연꽃과 관련된 산명이 많은데, 이는 산봉우리 형상이 연꽃 봉오리처럼 둥근 양감과 부드러운 생명감을 지녔기 때문이다. 금련산의 금련은 금(金)색 빛나는 연꽃이니 금(金)이라는 광물이 지니는 성질처럼 불변의 연꽃이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고, 지형은 금학이 알을 품는 금학포란(金鶴包卵)의 형세이기도 하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신라에 와서 경북 선산에 도리사(挑李寺)를 창건한 후, 부산 연산동의 금련산(金蓮山)에 마하사를 지었기에 일천 오백년의 역사를 품은 고찰이다. 마하사의 마하(Maha)는 고대인도 산스크리트어로‘훌륭한, 위대한’의 뜻으로‘훌륭한 사찰’이라는 의미가 된다. 또한 마하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나한도량이기도 하다. 이 절에는 16나한이 있으니 나한은 아라한이라고도 부르며 천안명, 숙명명, 누진명의 3명(命)과 육신통(六神通), 8해탈법(解脫法)을 모두 갖추고 인간과 천인(天人)들의 소원을 속히 이루어 준다고 알려져 있다.

마하사는 깊은 산중사찰이지만 실은 부산의 중심인 시청에서 10분 거리 남짓할 뿐 아니라, 우리민족의 오랜 신앙으로 자리 잡은 나한신앙의 근본도량으로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도심과 산지지형이 한 데 어우러져 공존하는 부산만의 특색이랄 수 있다.

절의 가람배치는 산지사찰이란 지형과 수차례의 개축 때문에 전통적인 가람배치를 정연하게 따르지는 못했지만 좁은 경내를 잘 정리하고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는 불탑이 사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으나, 차차 불교 예배상에 관심이 커지면서 불탑신앙은 뒷전에 밀리게 된다. 가람배치를 보면 하층은 4천왕 그림을 그린 천왕문, 상층은 범종을 매단 범종각으로 쓰는 사찰 3문 중 두 번째 천왕문을 지나 사찰 경내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강당과 종무소 건물을 마주보게 된다. 사찰로 들어가려면 이 건물 가운데를 벌려 놓은 낮은 입구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것이 하심문(下心門)이다. 전통사찰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여기도 부처님 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물의 아래쪽으로 난 문을 통해야 한다. 이는 건물 아래를 지남으로써 자연히 고개를 숙이게 되니, 자신을 한없이 낮추라는 불문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의미가 된다. 이 하심문에는 좌우벽에 금강역사를, 천장에는 비천 단청이 되어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응진전과 대웅전, 오른쪽에 마하대복련과 그 뒤에 요사채, 앞쪽에 5층 석탑과 높은 석계 위에 삼성각이 보인다. 그다지 넓지는 않으나 새가 알을 낳아 품고 있는 둥지 같은 오붓한 분위기의 사찰이다. 이 사찰의 얽힌 내력을 살펴본다. 

먼저 나한에 대한 전설이다. 이 나한은“너희들은 불법(佛法)을 수호하고 공덕을 닦는 사람들의 참된 복전(福田)이 되라.”는 부처의 부촉을 받고 스스로 수명을 연장하여 열반에 들지 않고, 항상 세파에 지친 불쌍한 중생을 보호하라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어느 해, 이 절 공양승이 동짓날이 되어 새벽 일찍 동지 팥죽을 쑤려고 부엌으로 나가 화로에 묻어둔 불덩이를 찾았으나 불이라고는 없었다. 너무 황당한 일이라 먼저 팥을 씻어 솥에다 얹혀 놓고, 불씨를 얻으러 아랫마을로 갔다. 그 곳 촌로(村老)가 하는 말이 “조금 전에 상좌 아이가 불을 얻으러 왔기에 불을 주고, 또 먼저 쑤어 놓은 우리 집 죽을 주었더니 먹고 갔다.”고 하였다. 절에서는 상좌 아이도 없을 뿐더러 불을 얻으러 보낸 일이 없으므로 그는 이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겨 절 부엌으로 돌아와 보니, 화로에 불덩이가 벌겋게 들어 있었다. 이것을 본 공양승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하고서 그 불로 동지 팥죽을 쑤었다. 그리하여 죽을 담아 나한전에 올리려고 갔더니, 십육 나한 오른쪽에서 셋째 나한 입술에 팥죽이 묻어 있었으므로 그제야 그는 이것은 ‘나한님이 불 없는 것을 보시고 동자로 화신하여 아래 마을로 가서 불씨를 얻어놓아 죽을 쑬 수 있게 하셨구나.’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한때 절의 주지스님이 뜰에 벼를 널어놓고 외출하고 돌아오니 참새 떼가 널어놓은 벼를 죄다 먹고 있었다. 그는 “나한님은 어찌 벼를 좀 보아주지 않으시고 새가 먹게 내버려 두십니까?”하고 말하였더니, 그 후 마하사 주위에는 참새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마하사는 도주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찰이다.『전경』에서 그 근거를 찾으면 다음과 같다.

 

“도주께서는 기축년 겨울에 동래 마하사(摩訶寺)의 방 한간에서 정화수 스물 네 그릇을 받들고 사십 구일을 한 도수로 정하시고 공부를 계속하셨도다. 이 광석(李光石)이 대웅전에서 도주를 위해 발원 염불을 올리니라. 사십 구일이 거의 될 무렵에 도주께서 승려와 시종자에게「법당의 불상을 자세히 보았느냐」고 물으시므로 그들이 달려가 보니 불상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도다. 도주께서 사십 구일을 다 채우신 새벽에 공부실 위에 학이 울며 날아가고 시종자에게 그 동안 모아놓은 글씨 종이를 태우고 그 재를 시냇물에 띄우라고 이르시므로 시종자가 그대로 하니 시냇물에 무지개가 서는도다.”(교운 제2장 47절).

 

“도주께서 마하사에서 도수를 마치고 도장에 돌아오시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느니라. 도주께서 그 자리에서

 소년재기발천마(少年才氣拔天摩)   수파용천기세마(手把龍泉幾歲磨)

 세계유이차산출(世界有而此山出)   기운금천장물화(紀運金天藏物華)

   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伏)    도인하사다불가(道人何事多佛歌)

의 상제의 글귀를 외우시고 「상제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나가노라」고 말씀하셨도다.”(교운 2장 48절).

  

도주님께서는 1923년‘금년이 이재신원(利在新元) 계해년이라’고 말씀하시고, 전교를 내리신 바 있다.(교운 제2장 26절 참조). 여기서 석가여래는 거금(距今) 2950년 전 계축생(癸丑生) 소띠라는 것까지 밝혀주셨다. 전교가 내려진 해가 1923년이고 지금이 2013년이니 올해로 90년이 지났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불기(佛紀)는 올해로 3040년(2950 + 90 = 3040)이 된다. 3000년 석가의 운이 다하자 도전님께서 불기 3000년인 서기1972년 임자(壬子)년에 대순진리회 본부현판식을 거행하셨다. 

한편 불교계는 1956년 스리랑카 불교법황청에서 불기(佛紀)도 서기(西紀)와 같이 통일하기 위해 1956년을 불기 2500년으로 정하였다. 올해가 2013년이니 이를 결정한 해(1956년)로부터 57년(2013 - 1956 = 57)이 경과했다. 이 주장을 근거로 한다면 불기(佛紀)는 올해로 2557년(2500 + 57 = 2557)이다. 역설적으로 공자가 기원전 551년에 탄생하여 공기(孔紀)가 올해로 2564년이 되기 때문에, 공자가 석가모니보다 먼저 탄생했다는 말도 안 되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실제로는 석가모니가 공자보다 476년 이전에 태어났다. 또 이는 하늘의 운로(運路)인 500년 주기로 성인이 나온다는 성인출현설과도 맞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불교계가 1956년 스리랑카에서 결정한 불기(佛紀)는 잘못된 것이다.

올해 2013년(癸巳)을 기준으로 보면, 불기(佛紀)는 3040년이므로 40년, 공기(孔紀)는 2564년이므로 64년, 서기(西紀)는 2013년이므로 13년이나 그 한도(限度)가 이미 지났다.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후 천하지 대금산(天下之大金山)

           모악산(母岳山)에 금불(金佛)이 능언(能言)하고

           육장금불(六丈金佛)이 화위 전녀(化爲全女)이라“(예시 14절) 

 

옥황상제님 지진주(地眞主)께서 15세 소년으로 천진주(天眞主)이신 구천상제님으로부터 천명(天命)을 받들어, 40년 세월동안 1909년(己酉)에서 마하사 도수 1949년(己丑)년까지 갈고 닦아 봉청금을 잡았듯이, 인진주(人眞主)이신 박성상제님을 잡았다는 말씀이 된다. 조개에서 진주가 나오는 이치.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山)이 출현하는 삼신산(三神山) 불사약(不死藥)과 불로초(不老草)가 나오는 인산(人山)은 금산사(金山寺)에 감추어져 있고, 증산·정산·죽산이 이제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때, 우주가을시대 원시에 도(道)는 우주만상시원이라. 그 시원(原始) 연원(淵源)이 삼위상제님이시다. 시원 연원이 삼위상제님인데 어찌 염불(念佛)만 하고 있느냐라는 의미이다. 시루와 솥은 밖으로 드러나 있지만 숯은 땅속깊이 묻혀있다. 도전님을 우리 모두는 하느님인줄 알지만 외부사람은 모른다. 이제는 도전님도 밖으로 드러낼 때가 되었다. 

도주께서 보신 마하사의 공부는 49일을 한(一) 도수로 정하시고 정화수 스물 네 그릇을 받들면서 주문공부와 공사를 함께 보셨으니, 불상이 고개를 숙인 것도 공사에 감응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절의 신도회장 말에 따르면, 이 불상은 지하에 보관되다가 현재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전시 중이라고 한다.

 

『대순회보』포천수도장, 제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