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공사중인 금강산토성수련도장, 우: 금강산토성수련도장의 상량식>

 

금강산토성수련도장

 

금강산토성수련도장(金剛山土城修鍊道場)은 1996년 2월에 완공된 도장으로 민족의 영산이며 천하명산인 금강산 신선봉(神仙峯 1,204m) 자락에 위치해 있다. 학이 쉬다가 날아오르는 학사비천혈(鶴舍飛天穴)의 명당지에 유·불·선도를 모두 품고 있는 금강산 일만 이천봉의 정기가 시작되는 시발점에 세워져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금강산은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을 비롯하여 세존봉, 영랑봉, 월출봉, 일출봉, 옥녀봉, 상등봉 등 여러 많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등 유명지역이 휴전선 북쪽에 있어서 금강산이 모두 북한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음페이지 위성사진에서도 보이듯이 금강산의 절반 정도의 지역들이 남한에 있다. 
미시령을 경계로 남쪽은 설악산, 북쪽은 금강산이다. 신선봉 위쪽은 금강산이고 그 첫 봉우리가 신선봉이다. 금강산은 태백산맥의 분수령을 이루며 남쪽으로 길게 뻗었는데, 그 동쪽과 서쪽으로는 주봉에서 갈라진 산줄기와 산봉우리가 잇달아 솟아 일만 이천봉을 이루고 있다. 북부에는 남강과 신계천이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고성 서쪽에서 합류한 다음 동해로 흘러가고 있으며, 남부에는 진부령부근에서 발원한 남천과 북천이 동해로 흐르고 있다. 
금강산은 민족의 영산이요, 천하의 명산이다. 빼어난 절경과 뛰어난 경관 그리고 수많은 상징성을 우리들에게 영원히 안겨주고 있다.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은 금강산의 제일봉인 신선봉 밑에 유좌묘향(酉坐卯向)으로 자리하고 있다. 남(南)으로는 설악이 받쳐주고 있고, 서(西)로는 신선봉이 뒤에서 우뚝 서있다. 동으로는 문암천이 바다로 흐르며 동해를 내려 보는 뛰어난 지세를 갖추고 있다.

 

미시령 고개를 내륙 영서 인재에서 영동으로 넘으면 바른쪽으로 거대한 울산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금강산 봉우리를 만들때 늦게 도착하여 지금의 설악산에서 쉬는 바람에 금강산 봉우리가 되지 못하고 누에모습으로 굳어져 있다. 도장 왼쪽으로는 미륵신앙의 창시자인 진표율사가 창건했다는 금강산 화암사가 있다. 바위에서 쌀이 나왔다고 하여‘벼 화(禾)’를 써서 화암사(禾巖寺)라고 부른다. 그 앞은 세계청소년들의 잼버리대회가 열렸다. 청소년들은 미래의 꿈나무이다. 다가오는 후천선경세상을 이끌어갈 주체인 도통군자를 암시하지 않을까한다. 조금 더 내려오면 미륵불과 금강산토성수련도장이 보인다. 
도장이 현재 분단된 상태 즉, 남한으로 한정하여 방위를 보면 간방(艮方)이지만,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어 한반도 기준에서 보면 정역(正易)으로 정동(正東)이 된다. 즉 곤남건북(坤南乾北) 간동태서(艮東兌西)가 된다. 

“영세화장건곤위(永世花長乾坤位) 대방일월간태궁(大方日月艮兌宮)”(공사 제1장 18절)

박성상제님께서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 도수로 서울로 올라오실 때 구천상제님께서 정역(正易)의 방위를 밝혀놓으셨다. 

 

“이 몸이 죽어가셔 무어시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되야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이 시조는 조선시대 사육신중의 한사람인 성상문(成三問)의 시조이다. 이 시조의 봉래산 제일봉에서 한계령(寒溪嶺)쪽으로 가면 장수대(將帥臺)가 있다. 장수대는 6.25 전쟁때 우리 군이 설악전투에서 북한군에 승리한 기념으로 지은 이름이다. 여기서 산을 오르면 대승폭포(大勝瀑布)가 보인다. 이 폭포는 금강산(金剛山)의 구룡폭포(九龍瀑布), 황해북도 개성의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이다. 대승폭포는 높이가 88m이다. 신기하게도 우리 군이 그 여세로 북진하여 38도선에서 88km까지 수복하였다. 88은 최고의 생기를 북돋우는 수리이다. 봉래산 제일봉에서 7번 국도로 시속 60km ~ 70km로 1시간을 북으로 가면 민통선 안의 통일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 12,000봉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九仙峰)을 볼 수가 있고 일만 이천을 마무리 한다고 하여 말무리반도라고도 불린다.  
도장은 명당인 학사비천혈에 자리하고 있다. 한양의 터가 날아가는 학의 형국이어서 먼저 궁성을 쌓고 사대문을 축조하여 그 기운을 눌러 썼다는 일화처럼 금강산 도장도 외부 옹벽공사를 하여 바람을 잡은 후에 본 건물들을 세운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구천상제님께서“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 이천봉을 응기하여 일만 이천의 도통군자를 창성하리라.”(예시 45절) 라고 말씀하신 곳에 도장이 들어서 있고 아울러 본전 옆에 위치한 미륵불은 본 도장의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성상제님께서 금강산 신선봉에 수련도장을 건립하시면서 임원들에게“우리 일은 천지(天地)가 처음 개벽(開闢)할 때부터 정해져 있었나니, 앞으로 일만이천 도통군자가 나와 오만년 후천선경(後天仙境)을 건설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1995년 1월에 기공식과 정초식을 갖고, 4월에 상량식을 거쳐 그해 12월에 본전공사를 마쳤다. 1996년 6월에 휴양소가 마련되었고, 1997년 12월 25일에 미륵불(높이 19.5m, 둘레 12.12m)이 봉안되었다. 1996년 1월부터 수도인을 대상으로 매주 수요일부터 월요일까지 5박 6일의 연수가 실시되고 있다.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금강산 수련도장은 행정지역상 고성군이지만 오행상 토생금(土生金)이니 토성수련도장으로 불려진다. 이 도장은 산과 바다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강원도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건물 총 13개동, 대지 9000평, 연건평 7200평의 대규모 금강산도장의 개장에 대해 대순진리회는 포덕천하, 구제창생, 도통진경으로 남북통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본격적인 후천선경시대를 여는 시발점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대순회보』포천수도장, 제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