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의 신선  여동빈(呂洞賓)

 

중국 역사상 가장 으뜸 신선을 꼽는다면 도를 터득해서 선화(仙化)한 여동빈(呂洞賓)이다. 후에 중국 팔선(八仙)중의 한 사람으로 처음에는 선도(仙道)에 크게 통하였고 뒤에는 불에 입문하여 불도(佛道)에도 통했으므로 여조(呂祖)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종리권(鐘離權)에게서 도를 전해 받아 신선이 된 후, 세속에서 크게 이름이 알려져 신선의 대표로 추앙받게 된다.

여동빈이 일반 민중의 두터운 신앙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민중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개가 여동빈을 보고 짖다니, 좋은 사람을 몰라본다(狗咬呂洞濱, 不識好人心)”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그는‘사람이 진심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하여 이루어준다’는 유구필응(有求必應)의 모범이었다. 

여동빈은 당말(唐末) 경조인(京兆人)으로 이름은 암(巖)이고, 자는 동빈(洞賓)이며 호는 순양자(純陽子)이다. 그는 당나라 후대, 관서 하중부 낙현사람이다. 현재 지명은 산서성 영락현이며, 그곳에는 그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만수궁(萬壽宮)을 세웠다. 그는 당나라 덕종 정원(貞元) 12년 4월 14일에 출생했다. 그의 모친이 여동빈을 낳을 때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자주색 구름이 하늘을 덮었으며 한 마리 선학(仙鶴)이 하늘에서 내려와 침상으로 날아들다가 돌연 사라졌다고 한다. 

세차례나 진사시(進士試)에 낙제했는데 그때 이미 64세의 고령이었다. 실의(失意)에 찬 그는 강호를 유랑하다 우연히 장안에 있는 술집에 들렀는데 여기서 종리권(鍾離權)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가 바로 당팔선 중의 한 사람으로 훗날 여동빈의 스승이 되는 종리권인데 그와 종리권의 첫 만남이었다. 

종리권은 한나라 때 사람이므로 이미 500세도 더 된 신선이었다. 여동빈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선도 배우기를 간청했으나 종리권은 그의 속세의 인연이 아직 남아 있다며 뒷날을 기약하고 나는 듯 가버렸다.

이후 종리권은 그가 도를 받을 만한 그릇이 되는지를 보기 위해 열개 관문의 혹독한 시험을 치르게 한다. 이것이‘운방십시동빈(雲房十試洞賓)’의 일화인데 열 가지 시험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시(一試), 어느 날 오후, 여동빈이 밖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안사람들이 모두 병들어 죽어 있었다. 그래도 그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고 후한 장례를 준비하자 죽은 이들이 모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일어났다(속세간의 정에 쉽게 빠져들지 않는 일). 

  이시(二試), 하루는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다가 황금 수십 덩어리를 발견했는데 얼른 도로 묻어 버리고 하나도 갖지 않았으며 거리에서 고대의 구리벼루 하나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갈다 보니 금으로 된 것임을 알게 되자 곧장 그 벼루 판 사람에게 금 벼루를 돌려주었다(눈앞의 이익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일). 

 삼시(三試), 정월 어느 날 어떤 거지가 문 앞에 와서 구걸하자 여동빈은 재물을 모두 주었다. 그런 뒤에도 그 거지는 자꾸 욕심을 부리며 끈질기게 귀찮게 굴었지만 그는 거듭거듭 예로써 상대하자 웃음을 머금고 가 버렸다(덕을 펴는 마음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화내지 않는 일).

 사시(四試), 하루는 여동빈이 참선하고 있는데 혼미한 중에 어렴풋이 자기 자신이 산 속에서 양을 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맹호 한 마리가 양떼들을 쫓아오는 것이다. 그는 부랴부랴 양떼들을 산 아래로 몰고 가서 자기 몸으로 범을 가로막고 섰다. 그러자 뜻밖에도 그 맹호는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중생을 위하여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일). 

 오시(五試), 어느 날 산 속 초가집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문득 열일곱,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아리따운 여인이 친정에 가는 도중에 길을 잃었다면서 하룻밤만 묵게 해달라고 했다. 그 날 밤 그 아리따운 여인은 갖가지로 그를 유혹했지만 그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욕정에 마음이 미혹되지 않는 일). 

 육시(六試), 한번은 그가 물건을 거리에서 팔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이 그에게 값을 좋게 매겨 흥정하더니 막상 반값만 치르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 사람과 다투지 않고 깨끗이 상품을 내주고는 한 푼도 받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남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겸손히 하는 일) 

 칠시(七試), 하루는 멀리 놀러 갔다 돌아와 보니 집안의 재산을 모두 도둑맞아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성을 내지 않았고 잃었다고 걱정하는 생각도 없었다(물질에 대해 초연해 하는 일). 

 팔시(八試), 미친 것처럼 꾸민 도사 한 사람이 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약을 팔면서 “누가 이 약을 사려오? 먹으면 곧 죽는 약이지만 다음 세상에 반드시 도를 얻게 되오.”하였다. 그는 도를 구할 결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약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먹었는데 도리어 편안하고 아무 탈도 없었다(도를 구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일). 

 구시(九試), 하루는 그가 조각배를 타고 범람하는 강 위를 떠도는데 파도가 그렇게 거칠게 날 뛰어도 단정히 앉아 움직이지 않자 그 험하던 파도도 잔잔해졌다(생사의 기로에 처했을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일). 

 십시(十試), 한번은 그가 방안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괴상한 귀신들이 수없이 나타나 그를 때리려고 하고 또는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또 수십 명의 야차(夜叉)들이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는 귀신 하나를 데리고 오니 그 귀신이 “너는 전생에 날 죽였어. 그래서 내가 금생에 빚을 받으러 왔다.”하고 울부짖었지만 그는 피하지 않고 칼과 오랏줄을 잡고 자살하려 하니까 갑자기 공중에서 크게 꾸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귀신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에 순응하는 일). 

 

 이러한 십시의 과정을 무사히 마친 후 종리권이 나타나 여동빈의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속세의 마음은 없어지기 어렵고, 선인의 재주는 만나기가 어렵다. 내가 사람을 구하는 것은 남이 나를 구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네.”하였다. 스승이 제자를 찾는 것은 오히려 제자가 스승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니 도를 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가를 느끼게 해주는 말이다.

종리권이 계속해서 이르기를 “내가 열 번을 시험했으나 모두 꺾이지 않으니 그대는 반드시 득도할 것이네. 세상을 구제하고 남을 이롭게 하여 삼천의 공(功)을 꽉 채워 팔백 행(行)을 원만히 하면 바야흐로 신선이 될 것이네.”하였다. 그의 스승은 신선의 길을 감에 있어 모든 고난과 고통을 뛰어넘어 자신의 생명을 완성시키는 것(行)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함께 사는 세상 사람을 구제하는 것(功)이 몇 배나 소중한 과정임을 깨우쳐 주고 있다.

이어서 말하기를“세간에 살며 공행을 닦은 후에 나와 같이 살도록 하게.”했다. 그러자 그는 말하기를“저의 뜻은 선생님과 다릅니다. 반드시 중생을 모두 구제하고 떳떳이 상계에 오를 것입니다.”하였다. 이에 종리권은 그가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도를 깨닫는 신선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 그가 원하던 바는 단순히 득도하여 자신만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교에서는 속세를 초탈하여 신선의 경지로 중생을 인도하는 것을‘도세(度世)’라 한다. 여동빈은 종리권이 떠난 후 73세에 대도를 원만히 이루고 도세의 삶을 살게 된다. 이후 여동빈은 천상의 상제님으로부터 신선의 재목을 고르라는 선선사(選仙史)의 관직을 받고, 인간 세상에서 오래도록 활동을 하게 되었다. 훗날 그는 인연있는 사람을 찾아 금단(金丹)의 도로써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선맥을 전했다 한다. 지금껏 신선에 대한 아름다운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은 한사람이라도 더 인간을 세속에서 건져내어 선맥을 전수하려는 그의 애틋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는 세상에 수시로 모습을 나타내고 때로는 걸식하는 사람으로, 때로는 늙고 쇠잔한 영감으로, 때로는 누추한 중으로 나타나 사람들의 마음을 가름하고 그의 공덕을 헤아린 후에 도를 전하였다. 상제님께서 언급하신 빗 장수 이야기도 그 중의 한 일화이다.

  

  “나의 일은 여동빈의 일과 같으니라. 그가 인간의 인연을 찾아서 장생술을 전하려고 빗장사로 변장하고 거리에서 이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굽은 허리가 곧아지고 노구가 청춘이 되나니 이 빗 값은 천 냥이로다 라고 외치니 듣는 사람마다 허황하다 하여 따르는 사람이 없기에 그가 스스로 한 노구에게 시험하여 보이니 과연 말과 같은지라 그제야 모든 사람이 서로 앞을 다투어 모여오니 승천하였느니라.”(예시 61절) 

  또 다른 일화는 여동빈이 기름장사로 변신하여 기름을 팔면서 악양(岳陽)에 갔다. 기름을 사는 사람들마다 더 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한 노파만 기름을 사면서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동빈은 그녀가 신선공부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제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서 한 줌의 쌀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당신은 이 우물물을 팔면 부자가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 노파는 여동빈이 간 후 우물 속의 물이 전부 미주(美酒)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 노파는 우물 속의 술을 팔아 일 년 후에 부자가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여동빈은 그 노파 집에 갔는데 마침 노파가 없고 그녀의 아들이 집에 있었다. 여동빈이 “당신들 집은 지난 일 년 동안 술을 팔아 부자가 되었는데, 느낌이 어떠한가?”하고 물었다. 그 노파의 아들은“좋기는 좋은데 단지 돼지를 먹일 술 찌꺼기가 없어서 힘들다.”고 하였다. 여동빈이 탄식하면서“인심이 탐욕스러워 부끄러움도 모른다.”고 하면서 우물 속의 쌀을 거두어 들였다. 노파는 외출에서 돌아와서 우물 속의 술이 모두 물로 변한 것을 알았다. 

 “사람의 욕심은 이렇게도 끝이 없는가?”여동빈은 이렇게 사람들에 실망을 하고, 또 세상 속에서 미친 사람의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천지를 집 삼아 세상에 좌충우돌하는 도세의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도를 받아 신선의 길을 간 사람은 수없이 많다. 그의 자취는 당, 북송, 남송, 원, 명, 청조에 이르기까지 천년 넘게 역사에 실려 전한다. 

 

 이런 신선에 대한 이야기들은 전국시대 말기에 퍼진 방사술(方士術)과 크게 합쳐져 마침내 단약을 먹어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것을 전업으로 삼는 방사(方士)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여동빈의 가르침은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에 잘 실려 있다. 여조전서(呂祖全書) 서문에 여동빈의 가르침에 대해 말하기를“무릇 단종(丹宗)의 비밀스런 가르침은 본래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 억지로 말로 하자면 심성을 지극히 양성하는데 있으니, 음양의 운용을 시험하고 도덕의 묘함을 추구하며 천지조화에 통하고 생사의 진리를 깨우치고, 자연의 법칙에 순종할 따름이다.”고 하였다.

여동빈이 송대에 왕중양(王中陽)에게 도를 전한 이래로 왕중양이 개척한 전진교(全眞敎) 교단은 마단양, 구처기(일명 장춘진인長春眞人) 등에게 전해진 후 원·명대에는 도교의 주류가 되었다.

여동빈 선인은 세상의 온갖 고난을 두루 겪고, 다시 삼천가지공덕을 가득히 행하여 진선(眞仙)에 올랐다. 그러나 다시 커다란 자비심을 내어 모든 창생과 성인될 씨앗이 있는 사람들을 제도하기를 서원하였다. 세상을 등지고 은둔했던 다른 신선들과 달리 세상을 제도하기 위해 바쁘게 뛴 그의 활동은 역사 속에 길이 빛나고 있다.

상제님께서도 “나의 일은 여동빈의 일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보면 믿는 마음을 추호의 흔들림 없이 정진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한다.

 유불선(儒佛仙)에서 선법은 믿음을 중시한다. 최풍헌과 류훈장의 관계는 끝까지 그의 유언까지 믿고 실행하여 임진왜란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교법 제3장 17절 참조). 류훈장은 최풍헌이 비록 그의 머슴이었지만 범상치 않은 인물(신선)임을 알아본 것이다. 여동빈을 사람들은 빗장사로만 알았지 신선임을 알아보지 못하여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여동빈은 중생들이 명리재색(名利財色)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헛되이 죽음으로 가는 것은 경계한 듯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 후학을 경계하였다. 

 

        인신난득도난명 人身難得道難明  

        진차인심방도근 塑此人心訪道根  

        차신불향금생도 此身不向今生度  

        재등하신도차신 再等何時度此身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려워라 

       사람 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나니 

       이 몸을 이 생애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요 

 

이 인간의 몸 받기가 정녕 어려운데, 참다운 도를 만나 수행을 통해 신선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글을 마친다.

 

『대순회보』포천수도장, 제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