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재천 성사재인(謀事在天 成事在人)

 

선감 박동문(영등포 11방면)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사람으로 그 일에 최선을 다한 후에는 그 결과에 크게 연연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원래 삼국지에 등장합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촉나라의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지고 위나라를 공격할 때입니다. 제갈량은 계책을 써서 위나라의 사마의를 계곡(호로곡)으로 유인하였는데 계곡에는 화약을 잔뜩 묻어 놓고 화공을 준비한 상황이었습니다. 사마의는 40만 위군을 거느리고 호로곡에 깊숙이 들어온 다음에야 자신이 제갈량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후퇴명령을 내렸는데 그 순간 불화살이 사방에서 터져 나와, 화약에 불이 붙어 폭발했고 순식간에 40만 위군은 무너졌습니다. 사마의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는데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더 이상 화공은 통하지 않게 되었고 제갈량으로서는 다 이긴 싸움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때 제갈량은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로구나! (謀事在人成事在天)” 

이와 비슷한 일을 역사 속에서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인생사에서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상제님께서는 이와는 다르게 모사재천 성사재인이라 하셨습니다.

 

선천에는 모사(謀事)가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하였으되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 또 너희가 아무리 죽고자 하여도 죽지 못할 것이요 내가 놓아주어야 죽느니라. (교법 제335)

 

즉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 일을 꾸미는 것은 하늘에서 하심이고, 그 일을 이루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진멸지경에 이른 인류를 건지시기 위하여 개벽이라는 필연적 선택을 하실 수밖에 없었고, 그 이유를 “······ 낡은 집에 그대로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불안하여 살기란 매우 괴로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오.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오.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 나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라고 밝혀 주셨습니다.(공사 제12)

또한 상제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도수로써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어 물샐 틈 없이 도수를 짜 놓으셨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게 되니라 하셨다.”(예시 16) 의 구절에서 천지공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구년간의 대공사를 통하여 전대미문의 후천선경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물샐 틈 없이 짜놓으신 도수에 의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인사에 새로운 기틀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이루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반드시 이룩되도록 정해진 일입니다. 그 일을 받들어 이룩해나가는 속에 이제 인존(人尊)’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의 탄생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도의 법리와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천지보다도 크다고 하셨습니다. 또 그 마음은 신()이 드나드는 곳이며 신을 용사(用事)하는 중추기관이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일을 이룩하기 위해 인간 본연의 양심을 회복하고 일심을 가지면 신명이 응하여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일심이라는 말은 마음 중에서도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지극한 마음입니다. 신은 진리에 지극하다 하셨는데 그 지극한 신이 응할 수 있는 마음은 진리에 합일된 일심이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대순진리회 수도인은 입도(入道)하는 순간 선후각 간 연운(緣運)관계를 맺고 선각의 가르침으로 후각이 배우며, 후각의 올바른 행동으로 선각 역시 깨닫게 되는 상종(相從)관계로 수도하게 됩니다. 간혹 믿음을 중지한 사람들 중에는 대순진리는 믿지만 수도하기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 수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낙오한 경우일 것입니다. 단지 진리만을 믿는 것을 일심이라 한다면 누구나 일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므로 감정이라는 사심이 발동하여 그 일심을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수도인 상호간의 감정대립뿐만 아니라 물질에 대한 욕심에 의해서도 믿음을 잃게 됩니다. 후천에는 선천의 물질을 가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상제께서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니라. 망하려는 세간살이를 아낌없이 버리고 새로운  배포를 차리라. 만일 애석히 여겨 붙들고 놓지 않으면 따라서 몸마저 망하게 되리니 잘 깨달아라.(교법 제18)

 

이 말씀은 물욕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며 믿음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하겠습니다. 선천세상은 물질세상이며 누구나 그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상제님의 후천세상은 조화세상이므로 수도자는 그것을 믿고 그동안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잃어버렸던 본래의 양심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간의 감정대립과 물질에 대한 욕심에 의해 마음을 청정무구한 일심으로 유지를 못하게 되니 수도에 있어서 일심가지기가 죽기보다 어렵다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다시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는 말도 최선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처럼 최선을 다하고도 실패한다면 가슴 아픈 일일 것입니다. 또한 최선을 정말 다한 것인지 알 길도 없습니다. 선천세상의 인간의 한계라면 바로 이런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상제님께서 모사재천 성사재인이라 하셨으니 일이 이룩되지 않으면 최선을 다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게 되었습니다.

전경상제께서 화천하시기 전해 섣달 어느 날 백지에 二十四방위를 돌려 쓰고 복판에 혈식천추 도덕군자(血食千秋道德君子)를 쓰시고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나 二十四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워졌느니라고 하시고 이것이 남조선 뱃길이니라. 혈식천추 도덕군자가 배를 몰고 전 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니라. 그 군자신(君子神)이 천추 혈식하여 만인의 추앙을 받음은 모두 일심에 있나니라.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고 이르셨도다.”(예시 50)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수도자는 상제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상제님께서 믿어주시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들이 믿음을 나에게 주어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 (교법 제15)

 

상제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감정과 물욕에 지배받지 않고 본연의 양심을 회복한 일심을 뜻합니다. 그 일심일 때 신명이 응하여 모사재천 성사재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