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

 

‘해인(海印)’이란 글자 그대로 ‘바다의 도장’이란 뜻이다. 그 단어가 주는 약간의 신비한 어감(語感)처럼 ‘해인’은 신라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1300년 동안이나 우리 민간 속 깊이 전해져온다. 그 연유는 약 980여 차례나 되는 외세의 침략 속에 겪어야 할 혹독한 우리의 역사적 운명에 대한 희망과 보상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해인’은 도깨비방망이처럼 마음대로 이룰 수 있는 무소불능의 신비한 보물로 상징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용궁속의 보물’에서 ‘장중의 해인’으로 오랜 역사 속에 다양하게 변천되는 해인의 개략적인 의미와 전경속의 해인은 어떤 의미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해인(海印)의 원래적 의미

‘해인(海印)’은 본래 불교의 용어로서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준말이다. 삼매는 범어(梵語) samādhi(사마디)를 삼마제(三摩帝), 삼마지(三摩地)로 음역한 것으로, 그 뜻을 사전적 의미로 보면 ‘산란한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망념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한다. 석가부처는 깨달음을 전하실 때 이 삼매의 경지에 들어서 설하신다. 그리고 여러 삼매중에 『화엄경』을 설하실 때 드신 삼매를 삼매중의 최고의 경지인 ‘해인삼매’라 한다. 그 뜻은 바다(海)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의 온갖 사물이 남김없이 도장(印) 찍히듯 그대로 바닷물에 비쳐 보인다는 뜻으로 모든 번뇌가 사라진 부처의 마음속에는 과거와 현재·미래의 모든 업이 똑똑하게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주(宇宙)의 일체(一切)를 깨달아 아는 ‘부처의 지혜(智慧ㆍ知慧)’를 일컫는 말이다.

 

2. 해인(海印)의 유래와 그 의미의 변천

이 원래적 의미인 불교의 깨달음의 경지로서 ‘해인’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물건으로 상정되는 특별한 인식과 믿음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시초는 신라의 의상(義湘, 625-702)이 ‘법계도(法界圖)’를 작성하면서 이다. 일명 ‘해인도(海印圖)’라 명명하는 ‘법계도’ 는 그가 당(唐)에 유학하여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의 지엄법사(智儼法師)의 강석(講席)에서 화엄경을 연구할 때, 지엄법사가 해인 72개를 그려서 제자들에게 보여준 것을 의상이 그것을 보고 총괄적으로 한 개의 해인을 따로 만들어 지엄법사에게 바친 것이다. 

이 『법계도』는 전체적으로 사각형을 이루고 7언 30구로 되어있다. 또한 모두 54개의 각을 이루면서 210자가 한 줄로 연결되어 있어, 그 모양이 흡사 도장의 형태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상의 법맥(法脈)을 이어받은 정통성을 보장받기 위해 그에게 법계도인(法界圖印)을 정표로 받았다는 주장이 와전되면서 해인은 점차 특별한 물건 또는 보물로 믿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합천 해인사(海印寺)가 창건되면서 해인이 일반 대중에게 보다 더 친근하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원래의 깨달음의 경지로서의 해인 보다 그 신비한 조화력이 더욱 부각되어 결국은 일반인의 상상력과 결부되면서 후대에 이르러 구체적인 실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해인사에는 ‘해인’이라는 성스러운 보물이 보관되어 있다고 믿어졌으며, 해인사의 창건설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해인사 창건설화에 나타나 있는 해인은 주로 용궁의 보물인 도장이다. 이 해인은 우리의 소원을 다 이루어줄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신기한 보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 해인은 해인사 창건 후 팔만대장경각 속에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조화로 이곳에는 새, 짐승들이 똥 한 번 안 누고 벌레들이 대장경각 근처도 오지 못하여 장경이 그대로 보존되게 되었다고도 전한다. 하지만 해인은 누군가에 의해 도둑을 맞아 사라져버린 것으로 설화는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설화의 내용처럼 실제로 해인이 어떤 형태의 실물로 주조되어 해인사에 보관되었던 적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석문의범(釋門儀範)』에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최소한 1931년 이전의 어느 시점에 해인사에는 주물로 만든 해인이 엄연히 존재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설화속의 해인처럼 조화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외에도 해인의 실재 진위 여부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해인’이 확인되어 진 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민간속의 해인

해인은 불교설화나 민간설화 속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해인신앙으로 발전한다. 해인이 하나의 신앙으로 자리매김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시대의 대중적 요청과 해인신앙이 담고 있는 내용이 일맥상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두 전란이 참담한 패배로 끝을 맺었고 남은 것은 참혹한 고통뿐 이였다. 민중들은 해인과 같은 신력이나 도술의 힘이 있었으면 이 민족이 수난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원망과 아쉬움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임진록(壬辰錄)』에도 해인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러 이본 중에 『흑룡일기(黑龍日記)』에는 해인이 서산대사인 휴정이 묘향산에서 공부에 전력하다가 그 산에서 나는 옥석을 구해 “천지조화와 음양오행과 일월도수와 강산의 정기와 둔갑장신하는 법을 모아 새긴 물건”으로 묘사된다. 또한 해인신앙은 민간에 이어져 『정감록』과 『격암유록』과 같은 예언서에서도 등장하는데 여기에 나타난 해인은 앞으로 이 세상을 구할 초월적 존재인 진인(眞人)이 가져 올 물건으로 상징되며 해인역사만사여의형통(海印役事萬事如意亨通)으로 “모든 일을 뜻대로 형통하게끔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해인은 조선후기 신종교에서도 해인신앙의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증산교단에서는 말세에 나타날 병겁에 대비하는 신비로운 신물로서 해인에 대한 신앙이 더욱 강렬히 나타난다. 이는 의통에 대한 잘못된 이해나 깨달음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나를 잘 믿으면 해인을 가져다 주리라”고 하신 말씀을 의통과 부합시켜 의통인패로 생각하여 여러 가지 도장이나 부호의 형태로 만들어 지기에 이른다. 이 과정속에 잘못된 해인신앙의 확산도 동반 되었으며 해인을 토대로 한 상업화의 양상도 드러났다. 

이상에서 해인의 원래의 의미와 그 의미가 우리의 역사에서 민간 속에서는 어떻게 전승되며 또한 어떻게 신앙 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전경 속에 나타나 있는 해인은 어떠한 의미이며 그 해인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4. 전경속의 해인

『형렬이 명을 쫓아 六十四괘를 타점하고 二十四방위를 써서 올렸더니 상제께서 그 종이를 가지고 문밖에 나가셔서 태양을 향하여 불사르시며 말씀하시기를 “나와 같이 지내자” 하시고 형렬을 돌아보며 “나를 잘 믿으면 해인을 가져다 주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교운 제1장62절)

海印造化如意做作之精 해인조화는 뜻과 같이 짓고 만드는 정이다(교운 제2장42절 운합주).

海印造化無窮無極無山退海移野崩陵 해인조화는 다함도 끝도 없으며, 산이 없어지고, 바다도 물러나고, 들판이 이동하며, 대륙이 무너진다(교운 제2장42절 옥추통).

 

『도주께서 해인사에서 돌아오신 다음 날에 여러 종도들을 모아놓고 “상제께서 해인을 인패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여 어떤 물체로 생각함은 그릇된 생각이니라. 해인은 먼데 있지 않고 자기 장중(掌中)에 있느니라.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의 근원이 바다에 있으므로 해인이요. 해도진인(海島眞人)이란 말이 있느니라. 바닷물을 보라. 전부 전기이니라. 물은 흘러 내려가나 오르는 성품을 갖고 있느니라. 삼라만상의 근원이 수기를 흡수하여 생장하느니라. 하늘은 삼십 육천(三十六天)이 있어 상제께서 통솔하시며 전기를 맡으셔서 천지 만물을 지배 자양하시니 뇌성 보화 천존 상제(雷聲普化天尊上帝)이시니라. 천상의 전기가 바닷물에 있었으니 바닷물의 전기로써 만물을 포장하느니라”고 말씀하셨도다.』 (교운 제2장55절)

 위의 네 구절은 전경에 나타나 있는 해인에 대한 말씀이다. 첫째 구절은 구천상제님께서 해인에 대한 약속이시다. 즉 해인은 상제님을 잘 믿으면 가져다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즉 우리는 여기서 해인의 주재자(主宰者)가 상제님이심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해인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다름이 아닌 상제님에 대한 믿음, 즉 일심에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대인의 말은 구천에 이르나니 또 나의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잘 믿으라.』, 또『 인간의 복록은 내가 맡았으나 맡겨 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주리라.』,『진실로 마음을 간직하기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교운 제2장2∙4∙6절)고 일심의 중요성을 말씀 하셨다. 

두 번째 세 번째 구절은 해인조화는 뜻대로 만들고 짓는 정이고 그 작용은  산이 없어지고, 바다도 물러나고, 들판이 이동하며, 대륙이 무너지는 다함도 끝도 없는 해인조화의 능력을 말해주고 있다.

넷째 성구는 도주님께서 해인사에서 공부하신 후에 해인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즉 해인은 특정한 물건이 아니며, 또한 먼데 있지 않고 자기의 장중(掌中)에 있다고 하심으로, 해인을 물건으로 생각하는 그간의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 주신 것이다. 또한 상제님의 손바닥엔 임(壬)자와 무(戊)자를 지니고 계심은 우주의 시원(始源)과 조화의 권능을 나타내는데 ‘해인’이 우리의 장중(掌中)에 있다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또한 우리의 손에 살릴 생(生)자를 쥐어 주었으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고 하셨듯이 도를 바르게 깨닫고 많은 사람을 살려 포덕천하 구제창생이라는 상제님의 대업(大業)을 일심으로 해나감으로 상제님께서 가져다주시는 해인조화의 능력을 부여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해인은 곧 이치(理致)이고, 그 이치는 바다에 있다고 하셨다. 이치란 곧 음양의 원리이다. 대순지침에 도는 음양이고 음양은 이치이고 이치는 경우이고 경우는 법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하셨다. 

 이 음양의 이치가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바다이다. 바다에는 천지 이치의 근원인 물이 있고, 그 바닷물은 생명체의 근원인 음양이기의 결합체로서의 전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물은 수소(H₂)가 산소(o)와 결합하여 만들어 지는데, 이 때 수소원자(+)와 산소원자는(-)의 결합자체가 음양의 원리이며, 음양오행의 작용원리에 따라 수증기로 오르고 대기를 순환하면서 만물을 생장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도주님께서 밝혀 주신 해인은 곧 이치이고, 이 이치를 통하는 것이 도통이다. 즉 해인조화란 도통함으로서 부여해 주시는 조화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대순회보』포천수도장, 제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