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전서문(書傳序文)

 

‘서전서문(書傳序文)’은 ‘대학상장(大學上章)’과 함께 상제님께서 여러 성현들의 말씀 중에 중요시 하신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전경』에

상제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서전 서문(書傳序文)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대학 상장(大學上章)을 되풀이 읽으면 활연 관통한다」하셨느니라. 상제의 부친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많이 읽지는 못하였으나 끊임없이 읽었으므로 지혜가 밝아져서 마을 사람들의 화난을 덜어 준 일이 많았도다. (교법 2장 26절) 에서와 같이 상제님께서 “서전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한다”고 하셨으니 도통을 목적으로 수도해 나가는 우리 수도인에게는 이 ‘서전서문’이 좀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1. ‘서전서문(書傳序文)’이란?

‘서전 서문’은 중국 남송의 성리학자 채침(蔡沈, 1176~1230)이 쓴 『서전(書傳)』의 서문입니다. 즉 단어 그대로 『서전』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서전』은 주자(朱子, 1130~1200)가 그 제자인 채침으로 하여금 『서경(書經)』에 주해를 달아 편찬하게 한 책입니다. 이 『서경(書經)』은 중국의 고대 국가들의 정사(政事)에 관한 문서를 공자(孔子)가 편찬하였다고 전해지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자 산문이며, 중국 사상의 원류이자 중국 경전의 시원입니다. 전국시대에는 『서(書)』라 하다가 한대에는 존중하고 숭상해야 할 고대의 기록이라는 뜻에서 『상서(尙書)』라고 하였고, 송나라 시대에는 유교의 주요 경전인 5경(五經)에 속한다는 뜻에서 『서경』이라 불렀습니다.

  남송의 주자는 『서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롭게 주석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그 제자이자 사위인 채침에게 그 주석을 유언하였습니다. 이에 채침은 「요전」, 「순전」, 「대우모」의 각 편은 주자가 교정한 것을 기초로 하고, 그 이외의 부분은 이전 학자들의 학설을 인용하면서 10년 동안 작업하여 서기 1209년에 『서집전(書集傳)』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서집전(書集傳)』을 줄여 『서전(書傳)』이라 하는데 채침의 이 『서전』이 송(宋)대 이후 난해한 『서경』을 이해하는 데 가장 뛰어난 주석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서전 서문’은 바로 그 『서전』의 머리말인 서문이며 다음과 같습니다.

 

慶元己未冬 先生文公 令沈 作書集傳 明年 先生 歿 又十年 始克成篇 總若干萬言 경원기미동 선생문공 령침 작서집전 명년 선생 몰 우십년 시극성편 총약간만언

경원(남송4대 寧宗의 연호) 기미(1199)년 겨울에 선생 문공(주자)께서 나(채침)에게 명하여 『서집전』을 짓게 하시고 그 이듬해에 돌아가시거늘 그러한지 십 년 만에 비로소 책을 완성하니 모두 약 만자 이른다.  

 

嗚呼 書豈易言哉 二帝三王 治天下之大經大法 皆載此書 而淺見薄識 豈足以盡發蘊奧 오호 서기이언재 이제삼왕 치천하지대경대법 개재차서 이천견박식 기족이진발온오且生於數千載之下 而慾講明於數千載之前 亦已難矣차생어수천재지하 이욕강명어수천재지전 역이난의

아! 서경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으랴. 이제삼왕의 세상을 다스리는 큰 경륜과 법이 모두 이 책에 다 실렸으니 나의 얕은 식견과 학식으로 어찌 족히 그 심오한 이치를 다 드러낼 수 있으리오. 또 수천 년 뒤에 태어나 수천 년 전의 일을 밝히려 하니 이 역시 어려운 일이로다.     

 

然 二帝三王之治 本於道 二帝三王之道 本於心 得其心 則道與治 固可得而言矣연 이제삼왕지치 본어도 이제삼왕지도 본어심 득기심 즉도여치 고가득이언의그러나 이제삼왕의 다스림은 도에 근본하고 이제삼왕의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둔 것이니 바로 그 마음을 얻으면 도와 다스림을 진실로 얻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何者 精一執中 堯舜禹相授之心法也 建中建極 商湯周武相傳之心法也하자 정일집중 요순우상수지심법야 건중건극 상탕주무상전지심법야曰德 曰仁 曰敬 曰誠 言雖殊而理則一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왈덕 왈인 왈경 왈성 언수수이이즉일 무비소이명차심지묘야  

왜 그런가 하면, 정일과 집중은 요·순·우 임금이 서로 전한 심법이요건중과 건극은 상의 탕과 주의 무왕이 서로 전한 심법이며,덕이니, 인이니, 경이니, 성이니 하여 말은 비록 다르지만 이치는 곧 하나이니, 다 이 마음의 신묘함을 밝히는 바가 아닌 것이 없는 까닭이다.

 

至於言天 則嚴其心之所自出 言民 則謹其心之所由施 지어언천 즉엄기심지소자출 언민 즉근기심지소유시禮樂敎化 心之發也 典章文物 心之著也 家齊國治而天下平 心之推也 心之德 其盛矣乎예악교화 심지발야 전장문물 심지저야 가제국치이천하평 심지추야 심지덕 기성의호하늘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유래한 바를 공경하는 것이요백성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그 마음이 베풀어지는 바를 삼가는 것이니예악과 교화는 마음의 발함이요, 온갖 제도와 문물은 마음의 드러남이요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화평하게 함은 마음을 넓게 확장함이니 마음의 덕이 성대하도다.

 

二帝三王 存此心者也 夏桀商受 亡此心者也 太甲成王 困而存此心者也이제삼왕 존차심자야 하걸상수 망차심자야 태갑성왕 곤이존차심자야存則治 亡則亂 治亂之分 顧其心之存不存如何耳존즉치 망즉란 치란지분 고기심지존부존여하이              

이제삼왕은 이 마음을 잘 간직한 분들이요, 하의 걸과 상의 수는 이 마음을 잃어버린 자들이요, 태갑과 성왕은 고생 끝에 이 마음을 간직한 이들이다.마음을 간직하면 다스려지고 잃어버리면 어지러워지나니 다스려짐과 어지러워짐의 갈림이 돌아보건대 그 마음을 간직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後世人主 有志於二帝三王之治 不可不求其道후세인주 유지어이제삼왕지치 불가불구기도有志於二帝三王之道 不可不求其心 求心之要 舍是書 何以哉유지어이제삼왕지도 불가불구기심 구심지요 사시서 하이재

후세의 군주가 이제삼왕의 다스림에 뜻이 있을진대 그 도를 구하지 않음이 불가하고이제삼왕의 도에 뜻이 있을진대 그 마음을 구하지 않음이 불가할지니마음을 구하는 요체는 이 책을 버리고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

 

沈 自受讀以來 沈潛其義 參考衆說 融會貫通 迺敢折衷微辭奧旨 多述舊聞 침 자수독이래 침잠기의 참고중설 융회관통 내감절충미사오지 다술구문二典禹謨 先生 蓋嘗是正 手澤 尙新 鳴呼惜哉이전우모 선생 개상시정 수택 상신 오호석재                   침이 『서경』을 읽은 이래로 그 뜻을 깊이 침잠하고 여러 학설을 참고하여 자세히 이해하고 관통하여 이에 감히 자세한 뜻과 깊은 뜻을 절충하였으나 대개는 오래 전에 들은 것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요이전(堯典, 舜典)과 우모는 선생이 일찍이 바로잡으시어 아직도 손때 묻은 흔적이 오히려 새로우니 아! 애달프도다.

 

集傳 本先生所命 故 凡引用師說 不復識別 四代之書 分爲六卷 文以時異 治以道同집전 본선생소명 고 범인용사설 불부식별 사대지서 분위육권 문이시이 치이도동

집전은 본래 선생의 명인 까닭에 무릇 선생의 설명을 인용한 것은 다시 식별하지 않고, 4대(四代)의 책을 여섯 권으로 나누니 글은 시대에 따라 다르나 다스림은 도로써 한가지니라.

 

聖人之心 見於書 猶化工之妙 著於物 非精深 不能識也성인지심 현어서 유화공지묘 저어물 비정심 불능식야是傳也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 雖未必能造其微시전야 어요순우탕문무주공지심 수미필능조기미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書 因是訓詁 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  어요순우탕문무주공지서 인시훈고 역가득기지의지대략의

성인의 마음이 서경에 나타나는 것은 마치 조물주의 오묘한 뜻이 만물에 드러나는 것과 같아서정밀하고 깊게 궁구하지 않으면 능히 알 수 없으리라.이 집전은 요·순·우·탕·문·무·주공의 마음속 은미한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하겠으나요·순·우·탕·문·무·주공의 글은 이 집전에서 훈고하면능히 그 대략의 뜻을 얻을 수 있으리라.

 

嘉定 己巳 三月 旣望 武夷 蔡沈 序가정 기사 삼월 기망 무이 채침 서

가정 기사(1209) 3월 보름 다음날에 무이에서 채침이 머리말을 쓰노라. 

 

 2. ‘서전서문’의 요지(要旨)

 

‘서전서문’의 요지는 성인들의 심법(心法)인 ‘정일집중(精一執中)’과 ‘건중건극(建中建極)’입니다. 위의 ‘서문’의 내용에 따르면, ‘정일집중(精一執中)’은 요(堯)·순(舜)·우(禹)가 서로전한 심법(心法)이고, ‘건중건극(建中建極)’은 상나라의 탕(湯)왕과 주나라 무(武)왕이 서로 전한 심법(心法)입니다. 즉 두 황제인 요·순과 삼왕인 하나라의 우왕과 은나라 탕왕 주나라의 문·무왕이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대경대법(大經大法)으로 그 근본을 도(道)에 두었으며, 그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德과 敬과 誠과 仁이 말은 다르지만 그 이치는 하나이고, 그 마음의 신묘함을 밝히지 않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신묘함은 무엇을 말할까요? 조선의 선비들은 이 마음을 텅 비어있지만 신령스러우며(虛靈), 모든 이치를 갖추고(知覺), 신묘하여 밝다(神明)라고 하였습니다. 〔퇴계의 성학십도中 ‘심학도(心學圖)’의 도해내용〕 불가(佛家)에서도 ‘공적영지(空寂灵知)’라 하였습니다. 즉‘ 텅 비어 고요하지만 신령스러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우주의 시원인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무극(無極)과 같다고 보여 집니다. 무극은 곧 태극이고 태극은 하느님의 명령이라 하여 천명(天命)이라고도 합니다.

‘서문’의 내용 중에 “하늘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유래한 바를 공경하는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그 유래한 바는 바로 태극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이는 중용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는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천명(天命)을 성(性)이라 하였습니다. 이 성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았다 하여 본성(本性)이라 합니다. 이 본성은 순수 고차원적 정보와 순수 고차원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천부적으로 하느님의 명령어가 우리의 마음에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본성은 배우거나 경험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아는 능력이 갖추고 있다고 양지양능(良知良能)하다하며, 맹자는 이를 양심(良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배우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도덕적 자각능력과 실천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서문’에 “예악과 교화는 마음의 발함이요, 온갖 제도와 문물은 마음의 드러남이요.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화평하게 함은 마음을 넓게 확장함이니 마음의 덕이 성대하도다.”라고 하였으니 ‘정일집중(精一執中)’과 ‘건중건극(建中建極)’ 은 바로 이 신묘한 마음을 밝히고 경영하는 심법(心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정일집중(精一執中)

‘정일집중(精一執中)’은 『서경』의 내용 중에서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선위하면서 하였던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미하니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이 진실로 그 중도를 취하라(人心惟危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는 글의 ‘유정유일 윤집궐중’의 준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항상 위태롭고 道心은 숨어 잘 드러나지 않아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이 인심(人心)의 작용인지 도심(道心)의 작용인지 정밀하게 살피는 것을 ‘精’이라 하겠고, 그 밝힌 도심을 한결같이 견고히 지키는 일심(一心)을 ‘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執中’은 그 ‘중을 잡는다’는 뜻인데, 즉 중용(中庸)의 도를 취하라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중용은 일에 처해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누구에게나 알맞게 일상적이며 한결같이 도리에 맞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매사를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의 세계에 대한 것들을 인지하고 인식하며 판단하고 반응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인지하고 인식하며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어떤 반응하는가가 모두 각자의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때로는 도덕적 기준과 가치인 양심의 작용으로 때로는 사사로운 감정이나 욕심에 의한 인심의 작용으로 일어납니다. 따라서 일상 자신의 마음을 오직 정밀하게 살펴서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을 버리고 욕심을 제거하고 양심을 밝혀 오직 견고히 지켜 인심이 양심의 명령을 따르게 하여 모든 처사에 과부족이 없이 누구에게나 적중하고 적정한 바른 도리를 일상적으로 변함없이 하는 것을 ‘정일집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순지침에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또 “상제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언행과 처사가 일치되게 생활화하여 세립미진(細入微塵)되고, 마음이 무욕청정(無慾淸淨)이 되었을 때 도통진경에 이르니라.”(대순지침 p38-39) 고 하셨습니다. 도통을 목적으로 수도해 가고 있는 우리 수도인에게도 인심은 항상 위태롭습니다. 따라서 늘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정일집중(精一執中)’이 우리에게 주는 실천적 교훈은 무자기를 근본으로 세립미진 되고 무욕청정 되게 하여 우리의 참된 본성인 천성품(天性品)을 회복하고 처사의 모범이 되어 선·후의 연운의 체계에 따라 터득한 심법이 서로 잘 전수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2) 건중건극(建中建極)

‘건중건극(建中建極)’은 하(夏)나라 우(禹)왕이 남긴 정치적 이념입니다. 우(禹)왕이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을 홍범(洪範)이라 합니다. 홍법은 우(禹)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하늘이 큰 거북이의 등에 낙서(洛書)를 내려 주었는데, 거기에는 오행(五行)의 원리와 구주(九疇)의 대경(大經)이 담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홍범구주(洪範九疇)는 뜻 그대로 홍범의 대법(大法)과 구주(九疇)는 9개 조(條)를 말하는 것입니다. 9주는 오행(五行)·오사(五事)·팔정(八政)·오기(五紀)·황극(皇極)·삼덕(三德)·계의(稽疑)·서징(庶徵) 및 오복(五福)과 육극(六極)의 9개 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주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에게 선정의 방안을 물었을 때 기자가 이 홍범구주로써 교시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내용이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주(九疇)에서 핵심은 구주 중 오주(五疇)의 황극(皇極)입니다. ‘건중건극’은 바로 이 오주의 ‘황극’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황(皇)’은 ‘임금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임금은 사방을 다스리는 중앙을 뜻하므로 ‘황’은 곧 ‘건중’과 같은 뜻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임금은 가장 도덕성이 뛰어나고 열리어 밝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방을 살펴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지극히 곧고 바른 법도를 세워야 하는데 이를 ‘건중(建中)’의 의미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극(極)은 표준(標準)을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건중건극’은 임금이 중정(中正)의 道로 인륜과 도덕으로 그 규범을 정하고 지극히 바른 표준(標準)을 세워 법칙을 정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임금이란 만 백성의 어버이이자 스승과 같아서 모름지기 우러러 지극히 따르고자 할 수 있는 천하의 표준과 모범(模範)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또한 임금이 가야 할 왕도(王道)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단과 방면 그리고 더 작은 조직체 속에서 각각에게 주어진 책무와 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조직체가 잘 유지되고 발전되려면 체계와 질서를 바로 확립해야 함은 마땅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조직체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상호신뢰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불신풍조가 급격하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인륜과 도덕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물질만능주의에 의한 도덕성을 실조와 지나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천하포덕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근본이 두텁지 못하고 좋은 결실을 거두는 것은 있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수도인들은 경상애하(敬上愛下)인 자모지정(慈母之情)과 은사지의(恩師之義)의 심정으로 통심정 이루어 우리들 속으로 파고드는 불신의 풍조를 근절하고 상호신뢰로서 체계질서를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도인은 각자의 위치에서 솔선수범과 사사롭고 치우침이 없는 공명정대한 처사로 자신의 직분과 도리를 다하여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건중건극’이 우리 수도인으로서 다가오는 실천적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대순회보』포천수도장, 제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