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록4장21절
김 병계(金炳啓)가 열여섯 살 때 손바래기 앞에 있는 초강(楚江)의 들판 길로 오다가 진창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차에 마침 상제께서 손바래기로 오시던 길에 이것을 보고 뛰어들어 그 아이를 팔에 꼭 끼고 쏜살같이 들을 건너 손바래기에 이르셨도다. 상제께서 병계를 데리고 본댁에까지 가셔서 모친을 뵈었도다. 새 버선을 갈아 신으려는데 그것이 쭉 찢어지기에 다른 새것을 한 손으로 신으셨도다. 그리고 부엌에 걸려 있던 쇠고기를 모두 회로 만들어 잡수신 후에 병계를 보고 그놈 쓸 만한 줄 알았더니 하시고 돌려보내시니 그제서야 그 아이는 허둥지둥 돌아가니 이 아이가 나중에 덕천 면장이 되었도다.
행록4장22절
훗날에 윤경이 상제를 찾아뵈옵고 고부인(高夫人)과 희남(熙南)의 병세를 알리니라. 소식을 듣고 상제께서 「내일 살포정에 가서 나를 기다리라」고 이르셨도다. 윤경은 이튿날 살포정으로 갔으나 상제를 뵈옵지 못하여 바로 태인 소퇴원 주막으로 가니라. 주막 주인이 윤경의 물음에 「선생님께서 윤경을 새울로 보내라」고 전하니 그는 새울로 떠나가니라.
그는 도중에서 일병 수백 명을 만나 검문을 받았으나 가환으로 의사를 모시러 가는 길이라고 알리니 저희들이 모두 물러가는도다. 윤경이 새울에 가서 상제께 배알하니 상제께서 「오늘은 병세가 어떠냐」고 물으시니라. 윤경이 「집에서 일찍이 떠났으므로 잘 모르나이다」고 아뢴즉 상제께서 「네가 무엇하러 왔느냐」고 꾸짖으시니 윤경은 몸 둘 바를 모르더라. 이날 밤에 상제께서 윤경으로 하여금 밤이 새도록 문밖을 돌게 하셨도다. 윤경이 졸음을 달래면서 돌고 있는 중에 첫닭이 울더니 상제께서 문밖으로 나오셔서 「네가 졸리지 않느냐」고 물으시기에 윤경이 「졸리지 아니하나이다」고 여쭈니 「그럼 나와 함께 백암리(白岩里)로 가자」하시고 길을 떠나시니라. 김 자현도 따라 백암리 김 경학의 집에 이르러 조반을 먹고 다시 정읍으로 갔도다. 상제께서 일행을 앞세우기도 하고 뒤에 따르게도 하시면서 얼마동안 가시다가 「일본 사람을 보는 것이 좋지 않다」 하시고 정읍 노송정(老松亭)에 이르셨을 때 「좀 지체하였다가 가는 것이 가하다」 하시고 반 시간쯤 쉬시니라. 일행은 노송정의 모퉁이에 있는 큰 못가에 이르렀을 때 일본 기병이 이곳으로 오다가 이곳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돌아간 많은 말 발자국을 보았도다. 이때 상제께서 「대인의 앞길에 저희들이 어찌 감히 몰려오리오」라고 외치셨도다. 옆에 있던 윤경이 행인으로부터 수십 명의 일본 기병이 이곳에 달려왔다가 딴 곳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라. 상제께서 대흥리에 이르셔서 고부인과 희남의 병을 돌보시니라. 그들은 병에서 건강한 몸을 되찾았도다.
행록4장23절
상제께서 무신년 어느 날 고부인에게 「내가 떠날지라도 그대는 변함이 없겠느냐」고 말씀하시니 부인이 대하여 「어찌 변함이 있겠나이까」고 대답하였도다.
행록4장24절
이 대답을 듣고 상제께서 글 한 수를 지으셨도다.
無語別時情若月 有期來處信通潮
행록4장25절
그리고 고부인에게 다시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여덟 가지 병으로 어떻게 고통하리오. 그 중에 단독이 크리니 이제 그 독기를 제거하리라」 하시고 부인의 손등에 침을 바르셨도다.
행록4장26절
다시 「크나큰 살림을 어찌 홀로 맡아서 처리하리오」라고 말씀을 하시니 고부인은 상제께서 멀리 외방으로 출행하시려는 것으로 알았도다.
행록4장27절
六월에 이르러서도 가뭄이 계속되어 곡식이 타 죽게 됨에 김 병욱이 김 윤근(金允根)으로 하여금 상제께 이 사정을 전하게 하니라. 사정을 알아차리시고 상제께서 덕찬에게 그의 집에서 기르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오게 하고 종도들과 함께 그것을 잡수셨도다. 이때 갑자기 뇌성이 일고 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윤근은 「선생이 곧 만인을 살리는 상제시니라」고 고백하였도다.
행록4장28절
六월 어느 날 밤에 도적이 백 남신(白南信)의 친묘를 파고 두골을 훔쳐갔도다. 김 병욱이 사람을 보내어 상제께 이 소식을 아뢰었도다. 상제께서 촛불을 밝히시고 밤을 새우기를 초상난 집과 같이 사흘을 지내시고 난 후 남신에게 「두골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한적한 곳에 거처하되 다른 사람의 왕래를 끊고 기다리면 처서절에 그 도적이 두골을 가져오리라」고 전하게 하시니라. 남신은 백운정(白雲亭)에 거처하면서 명을 좇으니라. 七월에 접어들면서 친산의 아래 동리의 어른이 마을 사람들과 상의한 끝에 친산 밑에 사는 사람으로서 굴총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마을 사람들이 두루 찾고 그것을 찾는 사람에게 묘주의 상을 후하게 주기로 결의하였느니라. 마을 사람들이 각방으로 찾는 도중에 두골을 가지고 마을 어른을 찾는 동리 한 사람이 나타난지라. 그 어른이 이 사람을 데리고 백운정에 있는 묘주를 찾으니라. 그날이 곧 처서절이었도다. 그런데 두골을 찾았다는 자가 도적의 누명도 벗고 상도 탈 욕심으로 동리의 어른을 찾았도다.
행록4장29절
병욱이 용두치(龍頭峙) 주막에 계시는 상제를 찾아뵈옵고 그 사실을 아뢰니 상제께서 「그 도적을 어떻게 하려느냐」고 물으시므로 병욱이 「이미 경무청에 보냈나이다」고 여쭈니 가라사대 「사람을 잘 타일러서 돌려보낼 일이거늘 어찌 그렇게 하였느뇨. 속히 푸른 의복 한 벌을 지어 오라.」 병욱이 명하심을 남신에게 전하니 남신은 푸른 의복 한 벌을 상제께 올렸도다. 상제께서 그 옷을 불사르시고 「이것으로써 그 사람을 징역에나 처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니라.
훗날에 종도들이 처서날에 찾게 된 연유를 여쭈어 보았더니 「모든 사사로운 일이라도 천지공사의 도수에 붙여 두면 도수에 따라서 공사가 다 풀리니라」고 이르셨도다.
행록4장30절
차 경석이 상제를 섬긴 후부터 집안일을 돌보지 않아 집안 형편이 차츰 기울어져 가니라. 그의 아우 윤칠이 「선생을 따르면 복을 받는다더니 가운이 기울기만 하니 허망하기 짝이 없소이다. 직접 제가 선생을 뵈옵고 항의하리이다」고 불평을 털어놓고 상제를 만나러 가는 중로에서 큰 비를 만나 옷을 푹 적시고 동곡에 이르러 상제를 뵈온지라. 상제께서 그를 보시고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이 부근에 의병이 자주 출몰하기에 관군이 사방을 수색하고 있는 중인데 너의 비를 맞은 행색을 보면 의병으로 오인하고 너에게 큰 화난이 닥치리니 어서 다른 곳에 가서 숨었다가 부르거든 나오라」 이르시고 그를 다른 곳에 숨게 하셨도다.
그리고 형렬에게 윤칠을 오게 하고 그를 만나 돈 석 냥을 그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수일 후에 정읍으로 갈 터이니 네가 빨리 가서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윤칠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니라. 수일 후에 상제께서 고부 와룡리에 가셔서 경석에게 사람을 보내어 고부 학동(學洞)으로 오라고 전하게 하셨도다. 경석이 전하여 듣고 이튿날 황망히 학동에서 상제를 뵈오니 가라사대 「내가 윤칠이 두려워서 너의 집으로 가기 어려우니 이 일극(一極)을 가져가라」 하시고 돈 열닷 냥을 주시니 경석이 돈을 받아들고 여쭈기를 「무슨 일로 그렇게 엄절하신 말씀을 하시나이까」 하니 상제께서 「일전에 윤칠이 동곡에 온 것을 보니 살기를 띠었는데 돈이 아니면 풀기가 어려우므로 돈 석 냥을 주어 돌려보낸 일이 있었느니라」고 알려주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