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3장11절
그 후에 응종이 상제의 분부를 받고 식혜 아홉 사발을 빚고 태인 신 경원의 집에 가서 새 수저 한 벌을 가져오고 단지 한 개를 마련하여 상제께 드리니 상제께서 식혜를 단지에 쏟아 넣으시니 단지가 꼭 차는지라. 또 상제께서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준비하여 놓으시고 가라사대 「비인복종(庇仁覆鍾)이 크다 하므로 북도수를 보노라. 북은 채가 있어야 하나니 수저가 북채라. 행군할 때 이 수저로 북채를 하여야 녹이 진진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조각조각 찢으시고 조각마다 글을 써서 단지에 넣고 그 단지 입을 잘 봉하여 깨끗한 곳에 묻으셨도다.
공사3장12절
상제께서 남쪽을 향하여 누우시며 덕겸에게 「내 몸에 파리가 앉지 못하게 잘 날리라」고 이르시고 잠에 드셨도다. 반 시간쯤 지나서 덕찬이 점심을 먹자고 부르기에 그는 상제의 분부가 있음을 알리고 가지 아니하니라. 덕찬이 「잠들어 계시니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기에 덕겸이 파리를 멀리 쫒고 나가려고 일어서니 상제께서 문득 일어나 앉으시며 「너는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느냐. 공사를 보는 중에 그런 법이 없으니 번갈아 먹으라」고 꾸짖으셨도다. 이 공사를 끝내시고 상제께서 양지에 무수히 태극을 그리고 글자를 쓰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덕겸에게 동도지(東桃枝)를 꺾어오라 하시며 태극을 세되 열 번째마다 동도지를 물고 세도록 이르시니 마흔아홉 개가 되니라. 상제께서 「맞았다. 만일 잘못 세었으면 큰일이 나느니라」고 말씀하시고 동도지를 들고 큰 소리를 지르신 뒤에 그 문축(文軸)을 약방에서 불사르시니라. 그 후 상제께서 다시 양지에 용(龍) 자 한 자를 써서 덕겸에게 「이것을 약방 우물에 넣으라」 하시므로 그가 그대로 하니 그 종이가 우물 속으로 가라앉았도다.
공사3장13절
상제께서 와룡리 신 경수의 집에서 공우에게 「너의 살과 나의 살을 떼어서 쓸 데가 있으니 너의 뜻이 어떠하뇨」고 물으시기에 그가 대하여 말하기를 「쓸 곳이 있으시면 쓰시옵소서」 하였도다. 그 후에 살을 떼어 쓰신 일은 없으되 다음날부터 공우가 심히 수척하여지는도다. 공우가 여쭈기를 「살을 떼어 쓰신다는 말씀만 계시고 행하시지 않으셨으나 그 후로부터 상제와 제가 수척하여지오니 무슨 까닭이오니까.」 상제께서 「살은 이미 떼어 썼느니라. 묵은 하늘이 두 사람의 살을 쓰려 하기에 만일 허락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배은이 되므로 허락한 것이로다」고 일러주셨도다.
공사3장14절
상제께서 전주 봉서산(全州鳳棲山) 밑에 계실 때 종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니라. 김 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강한지라. 진묵(震默)은 하루 봉곡으로부터 성리대전(性理大典)을 빌려 가면서도 봉곡이 반드시 후회하여 곧 사람을 시켜 찾아가리라 생각하고 걸으면서 한 권씩 읽고서는 길가에 버리니 사원동(寺院洞) 입구에서 모두 버리게 되니라. 봉곡은 과연 그 책자를 빌려주고 진묵이 불법을 통달한 자이고 만일 유도(儒道)까지 통달하면 상대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또 불법을 크게 행할 것을 시기하여 그 책을 도로 찾아오라고 급히 사람을 보냈도다. 그 하인이 길가에 이따금 버려진 책 한 권씩을 주워 가다가 사원동 입구에서 마지막 권을 주워 돌아가니라. 그 후에 진묵이 봉곡을 찾아가니 봉곡이 빌린 책을 도로 달라고 하는지라. 그 말을 듣고 진묵이 그 글이 쓸모가 없어 길가에 다 버렸다고 대꾸하니 봉곡이 노발대발하는도다. 진묵은 내가 외울 터이니 기록하라고 말하고 잇달아 한 편을 모두 읽는도다. 그것이 한 자도 틀리지 않으니 봉곡은 더욱더 시기하였도다.
공사3장15절
그 후에 진묵이 상좌에게 「내가 八일을 한정하고 시해(尸解)로써 인도국(印度國)에 가서 범서와 불법을 더 익혀 올 것이니 방문을 여닫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고 곧 입적(入寂)하니라. 봉곡이 이 사실을 알고 절에 달려가서 진묵을 찾으니 상좌가 출타 중임을 알리니라. 봉곡이 그럼 방에 찾을 것이 있으니 말하면서 방문을 열려는 것을 상좌가 말렸으나 억지로 방문을 열었도다. 봉곡은 진묵의 상좌에게 「어찌하여 이런 시체를 방에 그대로 두어 썩게 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하나니라」고 말하면서 마당에 나뭇더미를 쌓아 놓고 화장하니라. 상좌가 울면서 말렸으되 봉곡은 도리어 꾸짖으며 살 한 점도 남기지 않고 태우느니라. 진묵이 이것을 알고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나는 아무런 원수진 것이 없음에도 어찌하여 그러느냐.」 상좌가 자기 스님의 소리를 듣고 울기에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고 말하니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네가 끝까지 그런다면 너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를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모든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옮겨 갔도다.
공사3장16절
상제께서 일정한 법에 따라 공사를 보시지 않고 주로 종이를 많이 쓰시기에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리켜 종이만 보면 사지를 못 쓴다고 비방하니라. 상제께서 그 말을 듣고 종도들에게 「내가 신미(辛未)생이라. 옛적부터 미(未)를 양이라 하나니 양은 종이를 잘 먹느니라」고 비방을 탓하지 않으셨도다.
공사3장17절
경석이 상제의 명을 받들어 양지 二十장으로 책 두 권을 매니 상제께서 책장마다 먹물로 손도장을 찍고 모인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것이 대보책(大寶冊)이며 마패(馬牌)이니라.」 또 상제께서 한 권의 책명을 「의약복서 종수지문(醫藥卜筮 種樹之文)」이라 쓰시고 「진시황(秦始皇)의 해원 도수이니라」 하시고 한 권을 신 원일의 집 뒷산에 묻고 또 한 권을 황 응종의 집 뒤에 묻으셨도다.
공사3장18절
상제께서 원일과 덕겸에게 「너희 두 사람이 덕겸의 작은 방에서 이레를 한 도수로 삼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중국 일을 가장 공평하게 재판하라. 너희의 처결로써 중국 일을 결정하리라」 이르시니 두 사람이 명하신 곳에서 성심 성의를 다하여 생각하였도다. 이렛날에 원일이 불려가서 상제께 「청국은 정치를 그릇되게 하므로 열국의 침략을 면치 못하며 백성이 의지할 곳을 잃었나이다. 고서(古書)에 천여불취 반수기앙(天與不取反受其殃)이라 하였으니 상제의 무소불능하신 권능으로 중국의 제위에 오르셔서 백성을 건지소서. 지금이 기회인 줄 아나이다」고 여쭈어도 상제께서 대답이 없으셨도다. 덕겸은 이레 동안 아무런 요령조차 얻지 못하였도다. 상제께서 「너는 어떠하뇨」 하고 물으시는 말씀에 별안간 생각이 떠올라 여쭈는지라. 「세계에 비할 수 없는 물중지대(物衆地大)와 예악문물(禮樂文物)의 대중화(大中華)의 산하(山河)와 백성이 이적(夷狄…오랑캐)의 칭호를 받는 청(淸)에게 정복되었으니 대중화에 어찌 원한이 없겠나이까. 이제 그 국토를 회복하게 하심이 옳으리라 생각하나이다.」 상제께서 무릎을 치시며 칭찬하시기를 「네가 재판을 올바르게 하였도다. 이 처결로써 중국이 회복하리라」 하시니라. 원일은 중국의 해원 공사에만 치중하시는가 하여 불평을 품기에 상제께서 가라사대 「순망즉치한(脣亡則齒寒)이라 하듯이 중국이 편안함으로써 우리는 부흥하리라.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의 조공을 받아 왔으므로 이제 보은신은 우리에게 쫓아와서 영원한 복록을 주리니 소중화(小中華)가 곧 대중화(大中華)가 되리라」 일러 주셨도다.
공사3장19절
종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어느 날 상제께서 「일본 사람이 조선에 있는 만고 역신(逆神)을 거느리고 역사를 하나니라. 이조 개국 이래 벼슬을 한 자는 다 정(鄭)씨를 생각하였나니 이것이 곧 두 마음이라. 남의 신하로서 이심을 품으면 그것이 곧 역신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역신이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들도 역신인데 어찌 모든 극악을 행할 때에 역적의 칭호를 붙여서 역신을 학대 하느뇨. 이럼으로써 저희들이 일본 사람을 보면 죄지은 자와 같이 두려워하니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3장20절
또 하루는 상제께서 공우에게 「태인 살포정 뒤에 호승예불(胡僧禮佛)을 써 주리니 역군(役軍)을 먹일 만한 술을 많이 빚어 놓으라」 이르시니라. 공우가 이르신 대로 하니라. 그 후에 상제께서 「장사를 지내 주리라」고 말씀하시고 종도들과 함께 술을 잡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상제께서 「지금은 천지에 수기가 돌지 아니하여 묘를 써도 발음이 되지 않으리라. 이후에 수기가 돌 때에 땅 기운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